플루트 연주가로 무대에 서다

도전! 할머니의 플루티스트 되기 007.

by 황인희

플루트를 다시 배우면서 기초부터 탄탄히 다지겠다고 맘먹은 나는 선생님에게 그 점을 신신당부했다. 다 알다시피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더 쉽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를 완전한 출발점으로 데려가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가르치는 것보다 어설프게 잘못 만들어진 나의 습관을 바로잡아주는 쪽으로 방향을 굳힌 듯했다.


플루트는 약 3옥타브의 소리를 내는데, 친절하고 아름답고 젊은 선생님은 내가, 자신이 가르친 초보 중 중간음 소리를 가장 잘 낸다고 칭찬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 자세가 틀렸다고 지적한다. 나는 바로잡은 것 같은데 틀렸다고 다시 지적한다. 거울 앞에서 자세 가지고 씨름을 해도 해도 해결되지 않았다.

기초부터 새롭게 배우겠다는 의지는 서서히 사라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전공할 것도 아닌데 적당히 소리만 내면 되는 것 아닌가. 40년 전에 배울 때 문제없이 연주했는데…’

큰맘 먹고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어 ‘슬럼프’가 찾아왔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얘기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사실 슬럼프의 직접적인 원인은 선생님의 잔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웬만큼 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레슨 차례를 기다리며 들은 앞 시간 수강생의 플루트 소리는 내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앞 시간 수강생은 배운 지 오래 되었나 봐요?”

“아, 그 분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어요.”

선생님과 나눈 이 대화가 나를 슬럼프로 빠뜨린 것 같다.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세월에 자세를 바로잡고 어느 세월에 진짜 플루트 소리를 낸단 말인가. 거기에 선생님의 지적 사항이 고쳐지지 않으니 좌절이 더해졌다.


그 무렵 남편 후배에게서 아주 소중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그는 분당에 있는 음악아카데미에서 첼로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 아카데미에서 1년 정도 레슨을 받으면 아카데미 소속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입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니, 정말 내가 꿈꾸던 연주가의 모습이 아니던가. 나는 바로 그 아카데미에 전화를 했다. 그 아카데미에서는 오케스트라를 두 개나 운영하고 있었다. 레슨비도 강남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두 달만이었지만 배움터를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새 선생님도 젊고 친절했다. 언젠가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싶다는 내 소망을 이해해주었다. 기초부터 바로잡고 싶다는 요청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겨워지면 안 되니 재미있는 곡도 함께 해보자고 했다. 비로소 제 자리를 잡은 듯했다. 레슨비가 싼 이유 중 하나는 나 혼자 독립된 공간에서 레슨 받지 못한다는 점 같았다. 넓은 연습실 곳곳에서 각자 연습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레슨한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의 연습 소리가 뒤섞여 약간 정신 없는 듯했지만 금세 적응되는 문제였다.


분당의 아카데미에서 봄을 지내며 1년을 채우기만 기다리며 열심히 배웠다. 내가 가진 문제를 받아들이고 서서히 고쳐나갔다. 시간은 걸렸지만 변화와 발전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같은 공간에서 연습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초보자들을 보며 플루트를 계속할 아이와 다음 달이면 그만둘 아이를 점치는 것도 나름 흥미로웠다. 플루트 레슨 시간에 임하는 태도를 보면 대부분 예측이 되었다. 그 아이들을 보며 플루트 레슨에 대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한 지 5개월 하고도 보름째 되는 날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엄청난 제안을 받았다. 그날이 마침 스승의 날이어서 날짜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새로 창립된 플루트 앙상블 단원으로 들어오지 않으실래요?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기 전에 앙상블 활동을 해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텐데요.”

나는 오케스트라만 바라봤지 앙상블 단원이 되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아직 배운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앙상블 단원이라니….

“에구, 제가 그럴 실력이 되나요?”

“처음 들어오는 단원은 4파트에 배정되는데 4파트는 연주하기 쉬워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제발 도와주세요. 꼭 들어오세요.”


나는 8월부터 플루트 앙상블에 합류하였고 11월에 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했다. 4파트를 맡은 나는 다른 세 명의 같은 파트 단원을 믿고 ‘립싱크’도 자주 했지만 긴장하지 않고 플루트 연주가로서 첫 무대 연주를 무사히 마쳤다.

앙상블은 내게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고 플루트 연주에 대한 의욕을 새롭게 불타오르게 했다. 연주회가 끝나고 단원들이 저마다 뜻한 길을 찾아 흩어질 때 나는 앙상블에 남기로 결정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플루트 연주 부분이 많지 않으니 진짜 플루트를 연주하고 싶다면 앙상블에 남으라는 선배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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