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할머니의 플루티스트 되기 008.
“음악회에 협주곡 협연을 의뢰받은 연주가들은 얼마 동안 연습해요? 1년? 2년?”
“글쎄요. 한 2주?”
“헉, 그 긴 곡을 2주만에 어떻게 암보 연주까지…”
“대개는 어린 시절에 다 익혀놓았던 곡이죠. 연주회 전에는 그저 느낌만 점검하는 걸로…”
프로들의 연주회는 거의 그런 식이라 했다. 각자 연주를 다 완성한 후 두어 번 모여 느낌만 맞추고 연주회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앙상블 선생님은 참 불쌍하다. 1년 내내 다음 연주회 곡을 ‘가르쳐야’ 하니까. 기초적인 박자부터 음정까지 모두….
음악회 가면 늘 신기했던 것은 협연자가 그 긴 협주곡을 악보도 안 보고 연주하는 것이었다. 플루트 협주곡은 비교적 짧지만 피아노 협주곡, 예를 들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같은 경우 3악장까지 50여 분이 걸린다. 그런데 연주자들은 그 긴 곡을 한 호흡으로 해치운다. 그냥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나름의 곡 해석에 의한 감정까지 담는다.
물론 어떻게 그게 가능한 지 나도 안다. 연습, 오직 연습이 결과를 말해줄 뿐이다. 나도 경험한 바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서울시립어린이합창단 단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말 실기 시험까지 치르고 입단하여 지금 세종문화회관이 된 당시 시민회관 무대에 몇 차례 오르기도 했다. ‘시립’ 합창단이었기에 연습도 시민회관에서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 자신감도 커지고 즐겁게 합창단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합창단에 못 다니게 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단복도 맞춰주고 처음에는 나름 뒷바라지를 해주다가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엄마 뜻대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합창단을 그만두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동네 피아노집에 다니던 나는 6학년이 저물어갈 무렵 다시 엄마 뜻대로 선생님을 바꾸게 되었다. 이번에는 동네가 아니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가는 먼 곳이었다. 연희동에서 여의도까지. 선생님은 동네 아줌마가 아닌 좀더 프로페셔널한 느낌을 풍기는 분이었다. 여의도 아파트 거실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다는 점도 ‘동네’와 큰 차이였다. 레슨비도 비쌌을 텐데 왜 그 선생님한테 가라고 했을까? 당시도 피아노의 경우 전공하려면 대여섯 살부터 시작해야 했다. 나를 피아노 전공으로 밀 의도도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그랬을까?
아무튼 그냥 설렁설렁 동네에서 하듯 대충 연습해갔다가 선생님한테 호되게 야단맞았다.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우는 내게 선생님은 다음 주까지 하루에 세 시간 이상씩 연습해오라고 했다. 집에 와서 정말 하루 세 시간씩 연습했다. 즐거워서가 아니라 선생님한테 잔소리 듣기 싫어서…
그런데 그 다음 주 레슨 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농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데 내 손가락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구 돌아갔다. 처음 경험한 연습의 힘이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느냐고? 나는 한 달만에 여의도 레슨을 그만두었다. 중학교 입학하면 거기까지 다닐 시간이 없을 거라는 엄마의 주장 때문이었다. 물론 사전에 나와의 상의는 한 번도 없었다. 그것도 이상하다. 내가 곧 중학교에 입학할 것임을 엄마가 몰랐던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결국 연습! ㅇㅇㅇ”
골프용품 광고 중 한참 다른 얘기를 하다가 이런 카피로 마무리 짓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좋은 기능이 있지만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결국 연습뿐이고 거기에 자기네 제품을 쓰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아주 호소력 있는 카피로 받아들여졌다.
운동이든 악기 연주든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것은 결국 연습량이다. 그런데 연습 시간이 같다고 결과가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마음으로 연습하느냐에 따라 연습의 질이 확연하게 달라지고 이는 결과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소질과 취미는 같은 말’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장영주(사라 장)는 네 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아홉 살 때 당대 최고의 지휘자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열다섯 살까지 베를린 필, 뉴욕 필, 빈 필 모두와 협연한 엄청난 기록의 소유자인 그녀가 열두 살 무렵에 한 인터뷰가 기억난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씩 연습해야 하는데 친구들과 놀고 싶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장영주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에게는 연습이 노는 거예요.”
물론 인터뷰니까 그렇게 말했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음가짐이 그 정도는 되어야 세계적인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정말 하루에 열 시간씩 연습하면 몸이 음악을 기억한다. 다른 음을 생각해도 몸은 기억된 음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얘기다. 어린 시절에는 기억이 비교적 빨리 몸에 붙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평생 동안 이어진다. 마치 자전거 타는 것처럼…
그런데 나는 그 정도로 취미, 곧 소질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가능하면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매일 연습하는데 길어야 한 시간 하면 벌써 진력이 난다. 그렇게도 원하고 바라던 연주자의 길인데도 말이다. 물론 나의 경우 하루 종일 연습할 수 있는 여건도 안 갖춰져 있다. 생각을 쏟아야 하는 많은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린 시절만큼 기억이 빨리 몸에 붙지도 않는다.
대학 졸업 후 평생 한 직장에서 공직 생활을 했던, 나보다 세 살 위 오빠가 정년퇴직 후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전에 피아노 학원으로 가서 연습하다가 거기서 간단하게 점심 먹고 이른 오후까지 연습하다가 온다고 했다. 그런데도 생각만큼 빨리 늘지 않아 조바심난 오빠가 선생님한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소질이 없나 봐요.”
오빠의 푸념에 피아노 선생님이 던졌다는 답변이 아주 걸작이다.
“아버님, 소질 없으신 게 다행이지요. 그 연세에 소질이 발견되었다면 일생이 얼마나 억울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