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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Nature 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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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ive Lore Wild Apr 08. 2023

봄비, 다음날

수리산 산책 

비가 온 다음날은 산으로 가야 한다. 


물을 담뿍 마신 나무는 어느 때보다 생기가 있고, 나무껍질은 수분을 머금어 더욱 진하다. 동네의 봄 꽃은 빗물에 다 떨어져 버렸지만, 아직 산 속의 나무는 꽃이 그대로다. 시원한 온도 때문인지 도심지의 꽃들보다 늦게 피고 늦게 진다. 나는 비가 내릴 때 산을 더 좋아하지만 어둑한 산속을 무섭기도 해서, 비가 오고 난 다음날 가는 것을 좋아한다. 


수리산 둘레길 


맨해튼 소호 웨스트 브로드웨이 우연히 들어간 갤러리에서 본 숲 속 그림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그림 중 하나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묘법은 아니었지만 미묘하게 다른 이파리들이 점처럼 찍혀 표현되어 있었다. 연하고 짙은 초록과 붉은빛이 점점이 캔버스 위에 뿌려져 있었다. 아쉽게도 작가 이름도 확인하지 못해 사지는 못하겠다. 


봄이 되면, 점점이 흩뿌려진 이파리가 산속에 펼쳐진다. 생각해 보니 갤러리에서 본 그림 속 숲은 봄이었다. 봄이 되면 유명한 산이 아니라도 새롭게 피어나는 조그만 이파리와 여린 꽃잎들로 점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비가 온 다음날은 물을 머금고 새로 피어난 꽃잎과 이파리가 봄 풍경의 절정을 만들어낸다. 


이틀 간의 봄비가 그치고 날이 갰다. 집 앞에 약수터에서 이어지는 뒷산으로 올랐다.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능선으로 오른다. 그 길은 수리산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이다. 오늘은 봉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운 감투봉과 무성봉을 지나 임도 오거리에서 내려오는 길을 선택했다. 벚꽃나무, 도토리나무, 소나무, 간간히 층층나무도 섞여 있다. 모든 나무를 구별하면서 지나지는 않지만 꽃이 피면 이름을 확인해 보곤 한다. 



수리산 둘레길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새로 피어나는 잎사귀들이 보였다. 곧 하늘색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꽉 찰 것이다. 봄을 즐기는 방법은 매일매일 바뀌는 날을 만끽하러 나갈 핑계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은 비가 그쳐서, 내일은 조팝나무에 꽃을 피어서, 다음 날은 바람이 선선해서. 올해도 부지런히 핑계를 만들어 여름이 오기 전에 숲 속 산책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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