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아빠는 돈 벌어 오느라 일주일 동안 힘들게 일하고 주말에 좀 쉬는 건데, 너랑 같이 아빠 혼내는 건 너네 엄마가 좀 심한 거 아닐까?"
주말에 아들이랑 휴대폰 보며 놀다가 혼나고 나니 서운한(?)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보통은 빈둥거리는 남편한테 빨래며 청소나 좀 거들어달라고 혼낼 만 한데, 책을 읽거나 공부하라며 혼내는 건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올려보니 한 번은 이렇게도 혼나 봤다.
"주말인데 누워서 휴대폰 좀 그만 보고 글이라도 써!"
브런치 알림을 보니 마지막 글을 발행한 지 한 달, 150일, 180일, 210일, 240일, 270일째 글을 쓰라는 독촉(?) 알림이 와있다.
아마도 매주 한 두 편, 적어도 달에 몇 편씩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들은 받아보지 못했으리라.
게으른 브런치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경험이다!
올해 초, 내가 평생 해본 프로젝트들 중에서는 가장 길고 규모가 큰 프로젝트에 PM(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되었다.
파견을 나온 이후부터 정신이 없기도 했고, 여러 가지 심란하기도 해서 따로 메모장에 써놓은 글들은 많이 있지만 글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거나 퇴고를 하지 못해 묵혀 놓기만 할 뿐 어떠한 글도 완성하지 못했다.
온라인 강의며, 독서 모임 리더와 같은 제안도 몇 군데 받았지만 그 일들도 성사시키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못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일은 어떻게든 시간을 짜내거나 만들어내거나, 중요 일정이 변경되어 그 일을 할 만큼의 시간이 갑자기 생기거나 하면 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에는 시간이 아무리 남아돌아도 손대기 힘들다.
"업무가 이런 흐름으로 진행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데, 이렇게 가만히 두고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이 듭니다."
"PM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저희도 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일이 고되고 힘들어서 번아웃까지 가본 적은 몇 번 있지만, 이번처럼 알아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상황을 크게 겪어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일이야 끝마치겠지만 이렇게 끝마치기에 급급하게 일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지독한 무기력감에 빠져 들었다.
만사가 귀찮고 주말 내내 시간이 나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글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쓰는 걸까? 여유가 없을 정도로 절박한 사람이 쓰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