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수가 몸에 좋다는 것을 어디선가(아마도 동영상으로) 보고는 한번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레몬을 주문했다.
직접 레몬을 샀던 것은 아이가 어렸을 때, 마트에서 한두 번이 전부였다. 아이가 자라서는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직접 만들겠다고 보챌 일이 없었다.
사과처럼 사다 놓고 먹는 과일도 아니고, 가끔 요리 재료로 즙이 필요하다 싶으면 통에 들어 있는 것을 샀기 때문에, 이후에 레몬을 직접 구매한 적은 없던 것 같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다 보니 양에 대한 감이 없었다. 가격 대비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2kg를 주문했더니 어마어마한 양의 레몬이 집으로 도착했다. 2~3kg짜리 사과 박스의 양을 미리 떠올려봤다면 단가가 조금 세더라도 1kg 또는 그 이하의 레몬을 주문했을 것이다.
레몬 세척법은 왜 이리 또 다양한지.
이것저것 인터넷을 보고 순서 없이 따라 하다 보니 뜨거운 물, 베이킹파우더, 굵은소금, 식초 목욕까지 마친, 주인을 잘못 만난 레몬들이 싱크대에 지친 듯 쌓여 있었다.
적당한 두께로 자른 레몬은 레몬수를 만들 물통에 차곡차곡 담고, 레몬수를 우려낼 통이 없어 처치가 곤란해진 레몬들은 급한 대로 작은 유리병들에 옮겨 레몬청을 만들었다. 그러고도 남은 것들은 냉장고에 보관했다.
아마 거의 한 달 정도는 집에 레몬수가 떨어질 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레몬수를 다 먹고 남은 레몬 조각들을 버리려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양의 레몬씨가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칼에 잘린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용케도 칼질 사이를 잘 피해 레몬 속살 속에 숨어 있던 씨들은 멀쩡했다.
'심으면 레몬이 자랄까?'
손질해 먹고 남은 파인애플 줄기, 아보카도 씨까지 심어서 키워내는 식물계의 금손들을 다룬 영상이나 블로그 글들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멀쩡해 보이는 씨앗 5개를 집 밖에 놓아둔 빈 화분에 심었다.
레몬은 열대과일이라 따뜻해진 최근에야 제주도 남단에서 조금씩 재배가 되기 시작했고, 당연히 대부분은 수입한다고 알고 있다. 날이 아직 더운 편이기는 했지만, 9월에 레몬을, 그것도 대충 심은 씨앗에서 싹이 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버리기엔 아쉬운 마음에 그냥 시도해 봤을 뿐.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5개의 씨앗 중 3개에서 작은 레몬 싹이 나기 시작했다.
며칠을 더 기다려 봤지만 남은 2개의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작은 종의 레몬나무를 실내에서 기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심은 레몬 씨앗은 우리나라 실내 정도의 날씨에서 잘 자랄 수 있는 것인지, 또한 얼만한 크기로 자라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계속 실외에 있는 화분에 둔다면 곧 추워질 날씨에 시들고 죽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말했다.
"화분 사러 나갔다 올 건데 뭐 필요한 거 없어?"
"갑자기 화분은 왜?"
"레몬 옮겨 심으려고."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오다 말다 하며 조금씩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 주를 넘기면 안 되겠다 싶어서 레몬 싹들을 화분에 하나씩 옮겨 심었다.
실내라고는 해도, 적어진 햇살과 건조한 공기, 밖에서부터 스며들 냉기로 인해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 잘 자랄 수 있을지, 내가 잘 키워낼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반대로 무럭무럭 잘 자라 나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른다.
괜히 (레몬 씨를) 심어보려고 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몬 화분을 만들고 나니 생명을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과 후회가 앞선다.
어느 단계에서 그만두어야 했을까?
레몬수를 만들려고 했던 일, 아니면 씨를 심어보려고 한 것, 그냥 죽게 놔두고 말 것을 화분에 옮겨 심은 일.
어느 것 하나 멈출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어느 날 레몬수가 몸에도 좋고 맛도 좋다는 동영상을 한번 봤을 뿐인데, 팔자에 없던 레몬 새싹 화분이 3개나 생겼다. 이렇게 또 챙겨야 할 생명이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