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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Jan 02. 2024

혜화동 카페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혼자 보내기에 아주 충분한 곳



 

 남편의 고강도 훈련 덕분에 허리는 며칠 만에 많이 좋아졌다. 통증은 여전하지만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의자에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것도 혼자 할 수 있게 되었다. 계속 집에만 있어 답답하던 차에 남편은 집 근처를 조금 돌고 오는 것도 허리에 좋다고 했다.

 혜화동에는 카페가 많은데 걸어서 5분 거리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분위기도 좋고 저녁에는 와인과 간단한 음식까지 팔고 있어 주말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자주 방문하지만 갈 때마다 집 가까이 이렇게 좋은 카페가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사하다.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꼭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듯한데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일정을 다 취소하고  동네에서 지내야 하는 사실이 슬프거나 우울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그런 마음이 안 든다.  가만히 앉아 숨만 쉬어도 좋다. 에너지도 충전되는 기분이다.




 



 카페에서 나의 루틴은 직원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자주 앉는 구석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커피를 주문한다. 가방을 열어 물건을 하나 둘 테이블 위에 세팅을 하는데 그곳이 사무실이나 작업실인 듯 테이블 가득 물건들이 올라온다. 노트북, 노트북 거치대, 무선 키보드, 책 몇 권, 수첩, 문구류, 이어폰 등. 그 사이 커피가 나오고 잘 세팅된 테이블을 보며 몇 모금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수첩과 볼펜을 꺼내 하루 동안 해야 할 일들을 적는데 책 읽기와 글쓰기가 대부분이지만 영어공부가 목록에 들어간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오랜 시간 있다 보면 멍해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영어공부를 하면서 환기를 시키거나 한 템포 쉬어 가면 더 오래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다. 그래도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음악을 듣거나 글쓰기 플랫폼에 들어가 다른 이들이 써 놓은 글들을 읽으며 다시 한번 글쓰기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


 요즘 소설을 쓰고 있다. 머릿속 내용이 글로 잘 표현되지 않아 문장과 문단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몇 주째 한 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노트북을 접고 수첩에 단어들을 나열하고 그림도 그리고 동그라미도 몇 개 그려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문장이나 문단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수첩에 적힌 내용들을 토대로 글을 쓰기 시작하니 어느덧 글쓰기가 풀려가고 있다.

 A라는 인물에 대한 글이 막혀 진도가 나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며칠을 끙끙대다가 B인물에 대한 글로 넘어가 쓰는데  A인물에 대해 실마리가 풀리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이야기를 써내려 간 것이 어느새 한 권의 소설로 완성되기도 한다.


 글쓰기 시작은 단순한 책 리뷰였다. 이후 일상을 에세이로  써내려 간것이 운이 좋아 공모전에 당선이 되어 전자책 출판으로까지 이어졌다.  요즘은 소설을 읽기 시작하다가 어느새 소설까지 써보고 있는 중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몇 년 동안 매우 성실했다. 성실의 이유는 글쓰기가 점점 즐거워졌기 때문인데 주인공을 정하고 결말까지 정해놓고 시작한 소설 쓰기는 중간에 주인공이 바뀌기도 하고 모두가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정해놓은 결말이 있었는데 예상하지 않은 결말에 도달하기도 . 또 등장인물에게 생각지도 못한 면을 발견해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한 가지 주제로 시작한 이야기가 다양한 물줄기로 뻗어나가 삶이라는 크고 넓은 바다를 마주하게 되기도 했다. 내가 만들어낸 인물과 상황임에도 글쓰기는 나를 전혀 다른, 혹은 더 깊고 넓은 세상으로 데려다 주었다.  꼭 모험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내가 쓴 이야기가 돌아와 내 생각을 바꾸거나 가치관을 바꿔 놓기도 하면서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글쓰기의 장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나면 다양한 자극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데 그 생각들을 써 내려가면 머릿속을 비워내는 것 같아 시원하고, 머릿속에만 있던 이야기들이 노트북에 옮겨지는 과정이 신기하다. 그 이야기들이 문서화되어 두꺼운 종이로 손에 들려있는 경험이 뿌듯하기도 하다.


 책도 안 읽히고 글도 안 써질 때도 많다. 그럴땐 그냥 조용히 카페에 앉아 있는다. 30분도 지나고 1시간도 지난다. 나는 그 시간을 다이어리에 '조용하고 심심하고 지루하다. 얼마만의 행복인지!'라고 적었다.

평일에 많은 수업으로 어느 날은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있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나보다.


 인디언이 사막을 횡단하는데 3일 동안 열심히 걷더니 갑자기 멈추어 선다. 왜 더 가지 않느냐는 말에 인디언은 '우리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했다. 따라올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한 일화가 있다. 카페에서 나는 영혼을 기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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