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서평
2024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다. 기억에 남는 명장면들이야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이었다.
대한민국 최세빈 선수와 우크라이나 올하 하를란 선수가 맞붙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올하 하를란 선수는 앞서나가고 있던 최세빈 선수를 치열하게 추격한 끝에 마침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올하 하를란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울었다.
잠시 후 심판이 승리를 확정 짓자, 그녀는 우크라이나 국기 색으로 칠한 마스크를 벗고, 땀과 눈물이 범벅된 얼굴을 엎드려 땅에 키스를 했다. 관중석에서 기립박수와 환호가 울려 퍼졌다.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소리쳤다. “우크라이나, 사랑하는 나의 조국. 이건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기도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
이문재 시인이 엮은 시집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표지에는 “기도는 하늘에 올리는 시, 시는 땅에 드리는 기도”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참상 속에서 조국을 사랑하는 일념으로 올림픽 동메달을 거머쥔 올하 하를란, 그녀는 땅에 키스함으로써 스스로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 (비둘기 먹이도 잊지 말고) / 전쟁에 참여할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잊지 말라) / 수도 요금을 낼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 (구름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 집으로, 당신 집으로 돌아갈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 (난민 캠프에 있는 사람을 잊지 말라)/”
(팔레스타인지지 프로젝트,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중에서)
이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라는 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기억하라 말한다. 무엇을 위해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세우면서까지 싸워야 하는지, 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 과연 생명의 존엄성 보다 전쟁의 명분 따위가 더 중요한 것인지, 전쟁을 일으킨 자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전쟁과 같은 끔찍하고 참혹한 일이 이 땅에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제 강점기의 잔혹한 역사와, 6.25 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은 더더욱 잘 알고 있다.
기도는 종교를 가진 사람만이 드리는 제의가 아니다.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 행동으로 상징되는 기도는 겸손 그 자체이자, 삶을 살아가는 태도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기도한다.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부분은 겸허히 하늘에 맡기기 위하여, 그리고 그 결과마저도 깨끗이 받아들이기 위하여 말이다. 기도는 삶과 사람과 인생을 대하는 거룩하고 진실한 자세다.
“조금 알면 오만해지고/ 조금 더 알면 질문하게 된다 / 거기서 조금 더 알면 기도하게 된다”
(라다크리슈난 “무엇을 조금 알면"전문)
‘시의 마음’은 ‘기도하는 마음’과 많이 닮았다. 무용하나, 시를 읽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 스스로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시의 마음’의 반대말은 오만함이다. 그래서 시와 기도는 더욱 닮아 있다. 기도는 낮은 마음으로 드리는 간구이기 때문이다.
-기도 시를 읽자, 기도하자
우리 옛 선조들은 간절한 염원이 있을 때마다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을 향해 빌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서낭당에 돌을 쌓으며 빌기도 했다. 이 또한 비과학적이고 무용해 보이나, 인생을 계속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된다.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다는 현실은 무력하나, 포기하지 않고 희망하는 사람만큼 강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종교인은 더욱 종교인다워지고, 비종교인 또한 '깨어 있는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번 시집에 사회적 영성을 직접 드러내는 시가 그리 많지 않지만, 기도문이든 시든 깊이 읽다 보면 그 안에서 사회적 영성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시집 말미, 엮은이의 후문 중에서)
나는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며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만큼 세상을 정화시키는 일도 없다고 믿는다. 종교는 없지만, 이러한 믿음 또한 신앙이라면 신앙일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마음이 바로 ‘기도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시집을 엮은 이문재 시인은 이것을 "사회적 영성"이라고 표현했다.
“당신이 내 부족 사람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인디언 추장의 기도시, 수우족(노란 종달새) 구전 기도문 중에서)
“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마종기, 겨울기도 1 중에서)
우리는 모두 필멸하는 존재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어떻게 살 것이냐는 물음은 어떻게 죽을 것이냐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
노을이 붉게 사라져 갈 때, 내 혼도 아무 부끄럼 없이 저물고 싶다면, 기도시를 읽자.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으며 내 한 몸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
기도함으로써 스스로 시 한 편이 되어보자. 겨울같은 세상이 몇 도쯤은 훈훈해질 것이다. 캄캄한 겨울밤 산 속에서도 별들이 흐드러지게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