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서평]나희덕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
이십 대 청년들과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 삶의 전쟁터 하나쯤은 있는 법, 시를 읽고 삶을 나누던 청년들에게서도 어두운 그림자가, 바닥에 쓸리는 이야기가 많았다.
열정과 패기로 시작한 사업을 처참하게 실패한 이, 선천적인 질병으로 매일 통증과 고통을 감내하며 사는 이, 가정이 많이 어려웠으나 꿋꿋이 버텨왔다는 이, 그리고 오래도록 준비한 시험에 계속 떨어져 슬픔에 잠겨있는 이도 있었다.
비단 이십 대만 그렇겠는가. 다양한 연령대의 어른들을 만나다 보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인생 사연들을 듣게 된다. 제각각의 삶의 무게에 가끔 버거워질 때, 나희덕 시인이 엮어 낸 시선집 ‘젊은 날에 쓴 시'를 읽어보면 어떨까.
꼭 젊은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시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풀 죽어 있던 무언가가 분명 소생할 것이다.
"192그램의 세탁비누는 아무 말이 없다
자신은 직육면체의 푸른 기름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그런 표정으로
저렇게 마악 깨어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한 대야의 물속에 푸른 영혼을 처음 담그던 때가"
("108그램"중에서)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등단 35주년에 펴낸 '연둣빛 시절'의 시 모음으로, 초기 시집 여섯 권에서 시인이 직접 고른 시들을 한데 묶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희덕 시인은 자신의 젊은 날을 "마악 깨어난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때"로 추억한다. 스물과 서른, 심지어 마흔에 썼던 시들도 마치 "한 대야의 물속에 푸른 영혼을 처음 담그던 때"로 회상한다.
이리저리 치대어질 운명으로 태어난 빨랫비누는 세월이 지나면서 각진 부분이 많이 둥글어졌을 것이다. 이제 막 껍질을 벗어낸 앳된 젊음도 무수한 눈물의 열매를 잉태하면서 더욱 단단히 여물었을 것이고 말이다.
"떨리는 손으로 풀 죽은 김밥을
입 속에 쑤셔 넣고 있는 동안에도
기차는 여름 들판을 내 눈에 밀어 넣었다.
연두빛 벼들이 눈동자를 찔렀다.
들판은 왜 저리도 푸른가.
아니다. 푸르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연두는 내게 좀 다른 종족으로 여겨진다.
거기엔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출렁거림, 또는 수런거림 같은 게 남아있다.
(중략)
그래. 저 빛에 나도 두고 온 게 있지.
기차는 여름 들판 사이로 오후를 달린다."
("연두에 울다" 중에서)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본 여름 들판의 위안을 떠올리며, 시인은 잠시 환해졌을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서 입에 쑤셔 넣던 김밥처럼 삶은 참 질기면서도, 푸르른 여름 들판에 해사한 빛처럼 눈부셨을 것이다.
만약 들숨과 날숨이 연둣빛이라면, 연두의 계절이 과거에 있지 않고 ‘지금’에 있다면, 지금 이곳에서 생동하는 우리들의 삶이 곧 연두의 계절일 것이다.
"그 돌을 손에 쥔 채 세상과 손잡고 살았네
그 돌을 손에 쥔 채 글을 쓰기도 했네
문장은 자꾸 걸려 넘어졌지만
그 뜨거움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던 밤 있었네
만일 그 돌을 던졌다면, 누군가에게, 그랬다면,
삶이 좀 더 가벼울 수 있었을까
오히려 그 뜨거움이 온기가 되어
나를 품어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네
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
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 가네
단 한 번도 흘러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
식어 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
("뜨거운 돌" 중에서)
뜨거운 돌을 손에 꼭 쥐고 걸어오는 이를 상상해 본다.그 돌을 누구에게도 던지지 않고 또 한 걸음을 내딛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이 뜨거운 돌은 표면적으로 세상을 향한 분노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엔 "삶을 사랑하는마음"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분노도 슬픔도 노여움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다채로운 감정, 사랑으로 똘똘 뭉친 뜨거운 돌은 그녀의 손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먹 안에도 들어있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
나희덕 시인의 시가 지닌 깊은 뼈대는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작품 “사라진 손바닥”, “땅끝”, “귀뚜라미”, “일곱 살 때의 독서”등을 읽다 보면 삶은 조금 더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의 불씨가 켜진다.
젊은 날의 고통과 휘청거림 속에서 쓴 시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살아있음으로 뜨거운 감각을 일깨워 준다.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숨과, 서서히 저물어가는 모든 숨들이 사랑스럽다.
간혹 힘이 빠져 주저앉아도 괜찮다. 닫힌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눈물을 흘려도 괜찮다. 젖은 땅끝에서 오직 뒷걸음질밖에 칠 수 없다 해도 괜찮다. 5시 44분이 5시 45분에게 나를 넘겨주면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삶이 문득 두려워져도 괜찮다.
우리는 그 위태로움 속에서도 아름답게 살아있다. 죽음이 아닌 삶을 향해 여전히 살아있다. 어떤 모습으로 여기에 있든, 우리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러니 꽃보다도 적게 산 우리여, 그러니 핀 줄도 모르고 피어있듯, 살아가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