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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브릴 Jun 10. 2019

'아말피 해안의 에덴'으로 표류하다

세계일주 에세이 |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 02







남부 이탈리아, 티레니아 해를 마주한 절벽을 따라 아말피 해안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그 중 포지타노는 세계 최고의 여행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이 아말피 해안에는, 흔히 알려진 포지타노(Positano), 아말피(Amalfi), 살레르노(Salerno) 외에도 이 곳 저 곳 작은 도시와 마을이 있다. 그 중에 '아말피 해안의 에덴(Eden della Costiera Amalfitana)'이라고 알려진 작은 도시 '미노리(Minori)'가 있다.






:: 1 ::


원본 출처: 이탈리아 레일 웹사이트(https://www.italiarail.com)


난생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이 도시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폴리(Napoli)를 떠나면서부터 카프리(Capri), 소렌토(Sorrento)를 거쳐 포지타노의 B & B*에 도착하기까지 연이어 문제들이 발생했고, 조금이라도 더 무리했다간 병이라도 날 것 같았다.

*B & B(Bed & Breakfast): 침실과 조식을 제공하는 숙박업소의 일종. 이탈리아의 게스트하우스는 대체로 'B & B'라고 명명되어 있다. 조식으로 보통 빵과 커피 한 잔을 제공한다. 아말피 해안 지역의 경우 그 외에 과일, 주스, 우유, 요거트 등을 트레이에 푸짐하게 차려서 침실로 가져다 준다.


마음 같아서는 포지타노(Positano)에 그대로 눌러 앉고 싶었지만, 이 세계적인 휴양지에서는 숙박료 때문에 또 바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3월, 비수기*인데도 숙박비는 왜 이리 높은가. 호텔도 아니고 B & B에 하루 투숙하는 데 1박 최저 3, 40만원 정도가 든다. 이 뿐인가, 물가도 비싸더라. 로마나 나폴리에 비해 두 세 배 가량 물가가 비싸다고 느꼈는데, 두 배 비쌀 때는 양이 적었다.

*이탈리아의 겨울은 3월까지로,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많다. 이 시기는 아말피 해안 및 카프리 섬 모두 비수기에 해당하며, 대부분의 숙박 업소와 식당,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미노리에서 실제로 머문 호텔의 위치. 소개글에 해변까지 '100 걸음' 떨어져 있다고 되어 있었다. 원본 출처: 위키피디아


Booking.com을 열고 아말피 해안의 숙박 시설을 뒤적거렸다.

바다가 보이고

파도 소리가 들리며

사용자 후기가 좋은 편이고

가격이 저렴한

호텔을 검색했다. 조식 포함, 4박 181유로에 뜬 스탠다드 싱글룸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호텔이 바로 '미노리'라는 도시에 있었던 것이다.




:: 2 ::


원본 출처: 위키피디아(TUBS [CC BY-SA 3.0 de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de/deed.en)])


머나먼 옛날, 서기 300년 즈음의 이야기랍니다. 시칠리아 북서쪽의 바닷가 마을 '파티(Patti)'에 '트로피메나'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어요. 전승하는 이야기는 의하면, 이 소녀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다고 해요.


트로피메나의 나이가 열 두어 살 즈음이 되자, 트로피메나의 아버지는 트로피메나를 시집보내고 싶어했습니다. 아버지가 마음에 둔, 부유한 집안의 남자가 있었던 것이에요.


하지만 트로피메나는 그 남자와 결혼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가톨릭 교리를 따르겠습니다, 하고 버텼지요.


트로피메나가 혼인을 거부하자, 트로피메나의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났어요. 트로피메나는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났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트로피메나는 결혼을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원본 출처: 안드레아 바카로(Andrea Vaccaro), <성자의 순교(Martyrdom of the Saint)>


여기서부터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G. B. 다플리토(G. B. d'Afflitto)라는 사람이 기록한 얘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이 어린 성녀는, 집에 머물러서는 결국 아버지의 강한 뜻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트로피메나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아버지의 집에서 탈출한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쫓겨 결국은 티나로의 보카 강 근처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이 곳은 지금 '마리넬로의 보카'로 알려진 곳인데, 파티에서 4마일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트로피메나의 아버지가 딸을 때리려 하자, 하느님께서 순결한 콜롬바를 보내셨다. 콜롬바가 날개를 펴고 내려앉자 바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트로피메나는 콜롬바 위에 올라 박해자로부터 벗어났다.




:: 3 ::


미노리. 출처: 위키피디아


미노리에 도착.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마을을 좀 둘러볼 요량으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여름철에는 알록달록했을 벽이 바닷바람에 부식되어 허옇게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배가 정박된 해변과 그 앞의 작달막한 광장을 따라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비수기는 비수기다. 영업 중인 곳도 오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미노리라는 이름은 '작다'는 뜻인데, 그 이름만큼이나 정말로 작았다. 느릿느릿 도시를 둘러봤는데도 한 15분 만에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평화로움과 고요함, 지루하리만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느낌, 우리나라의 리나 읍 같았다.


그러면서도 더 노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이 광장 문화 때문인지, 우리나라 농촌과는 달리 집이 옹기종기 몰려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도시의 익명성이 주는 약간의 편안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비수기에 시골로 왔으니까. 한 달 만 더 늦게 왔더라도 좋았을 것 같다, 생각하면서 호텔로 돌아왔다.




:: 4 ::


성 트로피메나 성당의 그림. 트로피메나 성녀의 일화를 담고 있다. 원작: Mario Carotenuto


아말피 해안에는 '레지나'라는 이름의 강이 흐릅니다. 이 강을 중심으로 두 개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요, 작은 마을이 '레지나 미노르', 큰 마을이 '레지나 마이오르'였답니다. '미노르'는 '작다', '마이오르'는 '크다'는 뜻이지요.


그 중 작은 마을, 고요했던 ‘레지나 미노르'에 시끌벅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 동네 사람들! 이것 좀 보시오! 이것 좀 도와주시오!"


여인 하나가 마을로 뛰어들어오며 외쳤어요.


"저 쪽, 저 쪽, 강 입구에! 글쎄, 사람 뼈가⋯⋯!"


사람들이 해안으로 가 보니 항아리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의 뼈가 들어 있었습니다.


성 트로피메나 성당. 출처: 위키피디아


이렇게나 작은 마을에 소문이 얼마나 빨리 퍼졌겠어요. 그러고도 이 흉흉한 소문은 더 멀리까지 퍼졌습니다. 곧 아말피와 나폴리에서 주교님과 사제님들이 오셨지요.


이렇게 작은 마을에 주교님까지 행차하시다니! 사람들은 이 일이 기적이라고들 했습니다.


성직자들이 오자 곧 항아리에 새겨진 글이 확인되었습니다. 저 멀리, 시칠리아의 마을 파티에서 살았던 트로피메나라는 소녀의 이야기였지요. 항아리에는 이 소녀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살았고, 또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에 관해 씌여있었습니다.


성직자들은 이 유골함을 교회로 옮기기로 결정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유골함은 너무나 무거웠지요. 사람의 힘으로는 옴쭉달싹도 하지 않았습니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 주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직 새끼를 배지 않은 어린 암소 두 마리를 불러, 저 항아리를 끌게 하라."


사람들이 흰 암소 두 마리를 데려오자, 신기하게도 항아리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저 스스로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 같았죠.


암소들은 마을 안쪽으로 항아리를 끌고오다가 우뚝 멈춰섰습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지금도 그 곳에는 트로피메나의 유골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답니다.




:: 3 ::


미노리에서 머문 호텔 ‘팔라쪼 빈지우스(Palazzo Vingius)’에서 보이는 미노리 바다의 모습. 원본 출처: booking.com


"저것 보세요! 바다가 민트색이에요, 민트색!"


지중해는 터키석처럼 새파랗기만 한 줄 알았는데. 오후 느즈막히 바다가 민트빛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늘은 푸르고 그 아래 바다는 민트빛을 띠는 경이로운 광경.


우습게도 민트색 바다를 보고 호들갑을 떠는 건 나 뿐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어요?"


호텔 주인 아들이 물었다.


"포지타노에 있었어요, 하루 뿐이었지만."


"아, 포지타노! 거긴 파라다이스죠!”


호텔 주인 아들이 부럽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했다.



일몰이 시작되자 민트빛 바다의 수평선이 짙은 파란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이 파란색이 바다를 메우면서 밤이 찾아왔다.


동네 산책, 소설 한 권, 음악 한 곡, 그리고 해질녘마다 찾아오는 민트색 바다를 기다리며 여유로운 나흘을 보냈다.


미노리는 아말피 해안에서 사람이 거주한 지 가장 오래된 곳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황제의 휴가지로 선호된 곳이며, 1세기의 것으로 파악되는 바다 별장이 발견되기도 했다. 현재 이 도시는 유명 관광지로서, 티레니아 해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 맛 좋은 페이스트리(pastry)로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맛 좋은 페이스트리 덕분에, 미노리는 '시타 델 구스토(Città del Gusto; 맛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온화하고 쾌적한 지중해성 기후로 '아말피 해안의 에덴(Eden della Costiera Amalfitana)'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위키피디아


미노리 호텔 방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외국인보다는 현지인이 주로 찾는

아말피 해안을 즐기고자 한다면

미노리로 한 번 표류해 보시라!






메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내용 작성에 참고한 자료: 위키피디아(https://en.wikipedia.org), 성 트로피메나 공식 웹사이트(http://www.santatrofimena.it), Pregunta Santoral(http://www.preguntasantor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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