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아가, 잘 지내니?
토론토에서도 조별 과제가 있었다던데, 잘 끝냈는지 모르겠구나.
너는 지난 학기에 조별 과제를 하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네 조에 속한 학생들이 전부 제 몫을 하지 않아서 네가 그 과제를 다 하다시피 했다고 했지. 너만 열심히 하고 다른 학생들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속상해하는 너를 보면서 엄마도 안타까웠다. 나는 기본적으로 우리 딸이 너무 힘들지 않기를 바라거든.
과제 제출이 끝나고 발표까지 네가 도맡아 했다고 했던가? 그래서 좋은 점수도 받았고 말이다.
그런데 너는 네가 그 과제를 혼자서 거의 다 했는데, 과제를 하지 않은 학생과 똑같은 점수를 받는 게 억울하다고도 했지. 그래서 그 사실을 교수한테 말할까 말까 고민도 했고 말이다.
그때 엄마는 "아서라, 절대로 말하지 마라"고 당부했지. 무엇보다 억울해 하지 말라고도 했고.
엄마 생각은 이랬다.
네가 억울해 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네 공부였다. 다른 학생들이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너는 온갖 공부를 다 했을 거다. 그래서 많이 알았겠지. 그러니 억울해하는 대신에 그들에게 고마워하라고 했다.
"너희들 덕분에 내가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하라고 했지.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게 사실 쉽지는 않지. 엄마가 20대였다면,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아마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을 가졌을 거야.
그런데 살다 보니 알게 됐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남을 탓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내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지. 심하면 적을 만들게 되기도 하고.
대신 내가 하나 더 주고 포용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친구가 생기게 된단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게 되고.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는 고사 성어도 있거든.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다는 거지. 과제를 안 한 학생들 중 일부는 게을러서 과제를 안 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또 일부는 과제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단다. 집안에 일이 있다거나, 아프다거나, 아르바이트로 바쁘다거나 등 사람의 사정이라는 게 여러 가지 거든. 그 학생들은 아마도 네게 두고두고 고마워할 거야. 네 덕분에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까 말이다.
너도 나중에 그 말을 했었지. 학생들 중 일부가 너에게 와서 고마워하더라고. 네가 한 그 일은 언젠가 너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서 과제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분명히 돌려받게 될 거야. 그게 세상 사는 이치거든.
무엇보다 네가 교수한테 속 사정을 얘기하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네가 빛나기 위해 남의 잘못을 들추어 내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못된단다. 비록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오늘 한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어떤 한국 시인의 엄마가 한 말이라는데, 엄마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마음속에 깊이 와닿더구나.
들어보렴.
[사람이 말이다.
할 말 다 하고 사는 거 아니란다.
억울함도 분함도 조금 남겨주는 거제.
잘한 일도, 선한 일도 다 인정받길 바라면 안 되제.
하늘이 하실 일도 남겨두는 것이제.
하늘은 말없이 다 지켜보고 계시니께.]
---박노해 <눈물 꽃 소년>
너무 멋진 말이지 않니?
네가 한 일은 하늘이 알고 있다. 굳이 네가 밝히지 않아도 결국 다 알게 되어 있단다. 또 설사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게 네 손해는 아니란다. 너에겐 무엇보다 강한 '자부심'이 생길 테니까 말이다. 그게 또 너를 성장시키는 네 실력이 될 테니까.
그러니 혹시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억울해 하지 말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좋겠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을 마음속에 담아 놓고 끙끙거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슬프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엄마한테 얘기하렴. 엄마가 비록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만, 네 투정 정도는 받아 줄 수 있단다.
내가 네 엄마니까!
하나 더 당부하자면, 너무 완벽하려고 하지 마라. '열심이 지나치면 욕심이 된다'라는 말도 저 시인의 엄마가 했더구나. 엄마도 공감한다.
아가, 내 딸아,
너는 엄마가 너를 '아가'라고 부를 때마다 좋아하더구나. 어쩌면 영원히 엄마의 아가로 있고 싶은 마음의 반영일 수도 있겠지 싶다.
오늘은 특별히 너를 아가로 부르니 엄마도 기분이 좋구나.
아가,
사랑한다. 곧 한국에서 보자꾸나.
2024년 7월 2일,
엄마가
#딸에게쓰는편지 #박노해 #눈물꽃소년 #성장 #덕불고린 #엄마 #딸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