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소공 Jul 04. 2024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없다!

네 가치는 네가 정하면서 겸손하고 당당하게 살기를...


하이, 딸! 


한국은 얼마전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곧 방학도 시작되겠지? 


엄마가 최근에 어떤 분의 자녀교육 관련 책을 봤는데, 자녀에게 해주는 '예쁜 말'이 그렇게 중요하다더구나. 그리고 집에 가훈도 있어야 한대. 


그 글을 보면서 엄마는 '허걱' 했다. 엄마는 딱히 너에게 예쁜 말도 안했고, 그렇다고 우리 집에 무슨 특별한 가훈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니, 아빠와 엄마가 너를 키울 때, 우리는 너를 너무 아무렇게나 키운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특히나 이쁜 말을 해줘야 한다는 부분에서 엄마는 할 말이 없더라. 


내가 이쁜 말을 듣고 자란 게 아닌 데다 말투까지 퉁명스러워서, 함부로 말을 하곤 했지. 물론 그 말투들이 너를 깎아내리는 말투는 아니었다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가치관을 갖고 너를 키웠을까 하고. 


다행히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어떤 사람을 겉으로 드러난 어떤 외형적인 조건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어떤 사람이 높은 직위에 있거나 돈이 많다고 굽신거리지도 기죽지도 말고, 돈이 없거나 초라해 보인다고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뜻이지. 


이 가치는 물론 우리가 너에게 ''로 전해준 것은 아니었다. 행동으로 보여줬겠지. 


좀 막연한가? 


예를 들면 이런 거란다. 


우리가 타이완에 살던 어느 해 여름,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배달원이 이미 타고 있었지. 여름이라 땀을 많이 흘렸는지, 시큼하고 꼬리꼬리한 땀 냄새가 진동을 하더구나. 


그때 너는 코를 싸쥐면서 "엄마, 냄새가 지독해"라고 말했지. 


엄마는 그때 참 당혹스럽더구나. 네가 영어로 말했고, 그 배달원은 타이완 사람이라 말 자체는 못 알아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무슨 뜻이었는지는 알았을 거야. 소통을 꼭 말로만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엄마는 그때 네 입을 막으면서 조용히 하라고 했던 것 같다. 밖에 나가서 얘기하자고. 


그때 너는 대여섯 살 때였으니 무심코 그런 말이 나왔을 거야. 딱히 그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냥 어린아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겠지. 


하지만 그때 그 사람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엄마는 참 미안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어떤 반응이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거든. 





너도 영화 기생충은 봤지? 





기생충에서 부잣집에 사는 남자가 자신의 운전기사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 때론 킁킁거리기도 하면서. 그 표현이 '지하실 곰팡이 냄새' 였는지, '행주 삶는 냄새' 였는지 모르겠다만. 


하여튼 무심코 한 이 말에 그 기사는 엄청난 모욕감과 자괴감을 느꼈단다. 그 냄새는 어쩔 수 없는 삶의 현실 때문에 생긴 거였거든. 지하층에 살 수밖에 없는 삶의 고단함 말이다. 


그 모욕감이 어느 순간 밖으로 터져 나오면서 결국 살인과 파국으로 이어졌지. 


물론 다소 극단적인 영화 속 설정이다만, 무심코 한 어떤 말은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 다른 사람의 처지가 곤궁할수록, 절박할수록 그럴 가능성은 더 커진단다. 


그러니 딸아, 


어떤 사람이 초라해 보이거나 힘들어 보일 때, 함부로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하지 말기 바란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구나. 


우리 집에서 일하던 릴리 아주머니 말이다. 너는 릴리 아주머니를 참 좋아했다. "만약 엄마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한테 갈래?"라는 질문에 너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릴리에게 가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너는 릴리 아주머니를 믿고 따랐다. 엄마의 가족도, 아빠의 가족도 능가할 만큼 말이다. 


그러던 너도 어느 날, 릴리 아주머니한테 무슨 사소한 일 때문에 짜증을 냈던 적이 있었다. 함부로 대했지. 마침 그때 집에 있던 아빠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곤 너에게 불같이 화를 내더구나. 생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상소리까지 해가며 너를 야단쳤지. 너는 놀라서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부엌에 있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전해 들었고. 


그 사건 역시 네가 릴리 아주머니를 무시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가 항상 아빠보다 엄마를 더 친근하게 여기는 한편, 더 만만하게 봤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가끔 함부로 대하기도 했고. 


릴리 아주머니도 어쩌면 그런 차원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건 좋지 않은 일이란다. 그게 누구든. 특히 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엄마가 나중에 릴리 아주머니한테 사과했더니, 릴리 아주머니는 오히려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다"면서 네 편을 들더구나. 네가 벌써 사과했다고 하면서. 고마운 분이셨다. 


어쨌거나 엄마 아빠의 가치관이 너에게 먹혔던 것인지, 너는 딱히 어떤 사람을 신분이나 지위 때문에 차별하거나 막 대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 참, 다행이다. 


냄새에 유난히 민감한 네가, 냄새가 안 좋다고 멀리한 친구는 더러 있었다만, 그건 무시와는 다르지. 


여기까지는 '사람 아래 사람 없다'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실상 아빠 집안이나 엄마 집안이나 다른 사람들을 어떤 위치때문에 무시하는 경향은 없다고 본다. 


아빠 집안은 워낙에 목사 집안이라 그게 당연했을 테고, 엄마 집안은 뼛속까지 서민으로 살아와서 그럴 기회도 없었을 거다. 


그래서 말인데. 어쩌면 우리가 좀 더 신경 써야 할 문제는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둘러보면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 


너는 아직 학생이라,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고 해봐야 교수 정도일 테니 딱히 굽신거릴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네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너보다 한참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거다. 엄청나게 잘난 사람들도 많이 만날 거고. 


네 성향도 우리와 닮아서, 그 대단한 사람들에게 굽신거리지는 않으리라 본다. 다만 기가 죽을 가능성은 있지. 


특히 그 사람들이 너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너를 무시할 때, 마음 약한 너는 스스로를 탓할 수도 있다.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겠지. 


그럴 때 네가 진짜 업무적으로 잘못한 것이면 당연히 배워라. 그리고 그 사람들 의견을 존중해라.  


하지만 그 사람들이 너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너의 능력 부족을 마치 여자라는 이유로, 또는 어떤 차별적인 이유로 비꼰다면, 그때는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니란다. 


그때 기억하렴.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비록 지위가 높더라도,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완벽하지는 않단다. 실수할 수도 있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사람이 가진 지위나 능력 때문에 무조건 수긍하지 말고, 네 입장을 당당히 밝히렴. 정확하게 무슨 문제인지 알려달라고도 하고. 


지난번에는 엄마가 '사람이 할 말 다하고 사는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건 네 입장을 앞세워 상대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뜻이지, 부당함을 무조건 참으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이건 우리끼리 말인데. 


너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너를 무시할때는 너도 '속으로' 좀 무시해도 된다. '돼먹지 못한 인간'일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얼마 전 네가 아르바이트 하던 곳의 매니저가 너에게 인격 모독에 가까운 막말을 했다고 속상해했지? 그런 경우, 업무상의 지적이 아니라면, 좀 무시해도 괜찮다.  





딸아, 


네 가치를 남이 함부로 평가하도록 그냥 두지 말기 바란다. 네 가치는 네가 정하는 거다. 그럼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단다. 


마찬가지로 남의 가치도 겉만 보고 함부로 평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미 너는 그렇게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에게서나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모든 사람에게서는 배울 점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럼 저절로 겸손해진단다. 


결국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은, '겸손하고 당당하게 살겠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란다.  이거 사실, 잘 안되는데 엄마도 노력중이다. ^^


오늘은 엄마가 꼰대 같은 말만 잔뜩 늘어놓는 것 같구나. 그동안 너에게 별로 좋은 교훈을 준 게 없는 것 같아서, 한번 해봤다. 이것도 괜찮지 않니?


딸아, 잘 지내렴. 


사랑한다. 


2024년 7월 4일


엄마가


#딸에게쓰는편지 #인간존중 #겸손 #당당 #인간의가치 #꼰대 #잔소리











이전 17화 하고 싶은 말도 좀 남겨 두거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