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폭력과 이중성
사랑하는 딸아,
오늘은 엄마가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 할 것 같구나.
어떤 분이 책에서 자녀에게 편지를 쓰다 보면, 미안한 일이 너무 많아서 쓸 거리가 넘칠 거라고 했는데, 엄마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중에서도 미안한 일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바로 엄마가 너를 때린 일이다.
아마도 네가 네다섯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타이완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항상 문이 말썽이었다. 문이 잠겨서 안 열릴 때가 많았거든. 그때마다 엄마는 그걸 열기 위해 열쇠를 찾아 헤매고, 가끔씩은 사람을 부르기도 했지.
그런데 문을 잠그는 주범이 너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 무심코 잠갔는지, 일부러 잠갔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마도 재미 삼아 일부러 잠그는 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엄마는 네게 문을 잠그지 말라고 부탁했다. 너는 알았다고 했고.
그런데 잠시 후에 또 문을 잠가버렸더구나. 그것도 부엌문을 말이다. 부엌에서는 아마 뭔가를 끓이고 있었던 것 같고.
엄마는 그때 폭발하고 말았다.
분명히 엄마가 부탁했고, 네가 알았다고 했음에도 또 잠갔다는 점이 일단 괘씸했고, 부엌에서 끓어넘치고 있는 음식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매를 들었다. 종아리를 때렸지. 너는 비명을 지르면서 울었고.
나는 사실 몇 대 만 때릴 작정이었다. 너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인식을 따끔하게 심어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그런데 말이다.
폭력이라는 게 참으로 이상하더구나. 너를 때리는 동안 분노의 감정이 급상승하는 것을 엄마는 느꼈단다. 마치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던 어떤 괴물이 깨어나는 느낌이었지.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때리는 행위 자체를 그만두기 힘들어졌다. 그걸 '쾌감'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고, '분노가 더 큰 분노를 부르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나도 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서재에 있던 네 아빠가 나왔다. 내가 때리고 네가 우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기가 막혀 하더구나.
그러면서 하는 말이 뭐였는지 아니?
"내 딸 때리지 마!"
허 참, 자기가 데려온 딸도 아니면서 표현 방식하고는. 그 말을 듣고 나는 물론 멈췄지. 속으론 좀 웃었다. 때마침 나와 준 네 아빠가 고맙기도 했고.
그리고 아빠는 너를 데리고 방으로 갔다. 뭐라고 하면서 달래줬는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멍하게 있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를 생각하면서.
엄마는 그날 너를 때리면서 생긴 그 이상한 감정이 생소하고 무서웠다.
사실 매를 들 때까지만 해도 '가볍게 몇 대 때리면서 겁이나 줘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를 들어 때리다 보니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이상 현상을 마주쳤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마음속에 숨어 있던 어떤 괴물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말이다. 분노의 감정에 내가 먹혀버렸다고나 할까.
그날 엄마는 결심했다. 다시는 너를 때리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 감정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거든.
엄마는 그 이후 너를 때린 적이 없었다. 결심을 지켰지. 그러고는 속으로 빌었다. 네가 그 '사건'을 잊어버리기를!
그때부터 너한테 더 잘해줬지. 사람이 원래 미안하면 더 잘해주는 거거든.
그런데 몇 년 후, 네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나? 네가 한번 묻더구나.
"엄마, 내가 엄마한테 맞은 것 같은데, 엄마 나 때린 적 있어?"라고.
그때 엄마는 뜨끔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아빠가 옆에서 그러더구나.
"아니, 없어. 엄마가 왜 너를 때려?"
엄마는 아빠가 한없이 고마웠다. 신뢰감이 샘솟더구나. '이 인간, 참 괜찮네!'라는 기분도 들고.
너는 뭔가 어렴풋이 생각나긴 했지만, 확실치는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끄덕이고 말았지.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더 더 더 잘해줬지. 왜? 미안했으니까. 네가 영원히 그 일을 잊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엄마가 왜 이 일을 너에게 말할까?
나도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무덤 속까지 갖고 가야 할 일을 왜 너한테 다 털어놓는지 말이다.
어쩌면 '엄마의 이중성'을 말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순한 듯하지만 순하지 않고, 모든 걸 다 포용하는 듯하다가도 한없이 까칠하기도 하고, 게으른 것 같지만 스스로를 몰아붙일 때도 있고, 마냥 태평스러운 듯하지만 가끔 굶주린 호랑이처럼 날뛸 때도 있거든.
한마디로 이중적이다. 어쩌면 다중적이고.
그래서 엄마는 엄마 자신을 이해하기가 참 힘들 때가 많았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더구나. 이런 면이 있나 싶으면 저런 면이 있고, 살다 보면 또 다른 면이 나오고.
한때는 이렇게 다변적이고 불완전한 내가 참 싫었다. '다중인격장애'라는 말이 나오면 엄마는 꼭 그게 엄마를 말하는 것 같아서 무섭기도 하더구나.
그래서 인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더 궁금해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참 궁금했거든.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게 오랫동안 엄마의 화두였다.
그런데 요새 공부를 하다 보니, 자신을 제대로 알고 죽는 사람은 많이 없다는구나.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래.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엄마 말고도 많이 있었나 보더라. 그게 참 위안이 되더구나.
그러니 이제는 스스로를 '다중인격장애'로 취급하지 않으려고.
그냥 엄마에게는 여러 가지 성향이 존재하는데, 그 다양한 성향이 여러 가지 가능성이 되기도 한다고 말이다.
참, 엄마 안에 있는 그 괴물은 말이다. 참 목숨이 끈질기더구나. 억눌린 감정이나 분노가 먹이거든.
엄마가 한동안 먹이를 안 줘서 굶어 죽었나 싶으면 꼭 되살아 나더라. 아주 작은 분노에도 되살아나는 걸 보면 가성비가 아주 좋아.
그런데 이놈은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닌가 봐. 가끔은 엄마가 의기소침해져 있거나 삶의 주도권을 빼앗길 지경이 되면, 이놈이 엄마를 일으켜 세우거든.
"야, 너 그러면 안 돼. 주도권을 찾아야지!"라고.
그러니 이제는 그 괴물과도 좀 사이좋게 지내보려고. 부정적인 감정도 잘 쓰면 약이 된다니, 이 괴물도 잘 다스려서 엄마 편으로 만들어 볼게.
다만, 너무 많은 먹이를 주면, 이 괴물이 미쳐서 날뛸 수도 있으니, 먹이는 최대한 적게 줘야지.
그러니 너도 엄마의 괴물이 날뛰지 않도록 최대한 협조하기 바란다. 이미 오래전부터 협조하는 것 같긴 하다만.
엄마도 열심히 수행해 볼게. 이 괴물은 수행만 하면 상당히 순둥이로 변하더라. 제법 말을 잘 들어.
사랑하는 딸아,
비록 어릴 때이긴 하지만, 너를 때린 것은 정말 미안하다. 엄마가 진심으로 사과한다.
사랑한다!
2024년 6월 27일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