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또 다른 면과 소송으로 이어진 죽음
딸아, 토론토에서의 생활은 어때?
많이 바쁘겠구나.
엄마도 요즘 좀 바빴단다. 너도 알고 있는 그 재판 말이다. 두달 전에 종료된 그 재판의 판결문이 드디어 나왔단다.
판결문에는 저 쪽편의 주장에 대해 '이유없음'으로 기각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 쪽이 방어에 성공한 거지. 저쪽 주장에 대한 판사의 일부 문장은 '말도 안된다'는 표현까지 있어서 엄마는 내심 통쾌했다.
물론 판결문이 나왔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란다. 그 판결문에 따라 협의 과정도 거쳐야 하지. 그것까지 말끔히 해결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또 알 수 없다만, 그래도 엄마는 5년을 끌어 온 '소송'이라는 큰 산을 넘은 것 같아 한시름 놓이는구나.
너도 너무 큰 걱정 안 했으면 좋겠다. 엄마한테 전화만 하면 그 걱정이었잖니.
2017년 12월에 발생한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에게 상실의 아픔만 남긴 게 아니었다.
바로 그 다음 해 미국에 있던 네 이복 언니 오빠로부터 소송이 들어왔지. 상속재산분할 소송 말이다.
우리가 상속재산을 분할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었다만, 그들은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보더라. 늘 엄마가 아빠 재산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지.
하여튼, 그때만 해도 그 소송이 이렇게 오래 끌 줄은 몰랐다. 네 대학 학비며 생활비까지 보내기 힘들 정도로 우리 상황이 어려워 지리란 예상도 못 했고.
아빠의 장례식 날, 너는 "내 영웅이 세상을 떠났다"라고 표현했다.
너는 아빠를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좋은 아빠였지.
그런데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너는 또 다른 충격을 감내해야 했다. 아빠에게 또 다른 자식이 있다는 사실, 아빠가 엄마랑 결혼한 것이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라는 사실을 듣고 너는 망연자실했다.
그때 네가 충격받아 얼굴이 파리해진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너에게 그 얘기를 하자고 한 것은 장례식에 참석했던 아빠의 여동생, 그러니까 너에게 고모가 되는 Evi였다.
아빠가 아무런 유언도 없이 갑자기 떠났기에, 아마도 그들이 소송을 걸어올지도 모른다면서.
당시 미국에 있던 아빠의 아들, 딸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우리가 연락을 못했으니까. 일부러 안한 건 아니었다.
아빠의 전화기며 컴퓨터를 아무리 뒤져봐도 연락처가 없더구나. 그동안 연락을 한 흔적조차 없었다.
할 수 없이 독일에 사는 아빠의 여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만, 그 여동생조차 연락한지 오래돼서 연락할 방법이 없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연락도 못하고 장례식을 치렀다.
어쨌거나 엄마는 네 고모의 말을 듣고, 설마 했다만, 1년 후 그게 현실로 다가왔다.
엄마는 처음에는 소송 사실을 너에게 숨겼다. 너는 고등학생이었고, 그 사실을 안다고 좋을 게 없었으니까 말이다.
나중에 네가 대학에 갈 무렵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말해줬다. 그때는 소송이 오랫동안 진행되면서 우리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피부로 다가올 때니까, 너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 사실을 알고 난 너는 그들을 원망했다. 너무너무 밉다고도 말했지. 엄마는 그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쓰다 보면 너도 망가지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만큼 네 삶도 피폐해지거든.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엄마는 그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완벽하게 이해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되는 부분도 있더구나.
아빠는 너에게는 영웅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저 미운 아빠였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더없이 자상한 남편이었지만, 전처에겐 아니었겠지. 그랬으니 이혼을 했을 테고.
재판 과정에서 네 고모 Evi가 편지를 보내왔더구나. 재판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그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전처와 그 자녀들이 네 아빠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고 말이다.
네 아빠가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다고 아빠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의 가장 큰 잘못은 자녀들에게 부부관계의 문제를 충분히 설명을 안 하고, 이해를 구하지도 않고 집을 떠났다는 거지.
그러니 그들은 버림받았다는 기분을 느꼈을 테고. 그 원망이 오죽했겠니. 그들은 내내 그 원망을 품고 살았던 것 같더라.
사실 상속재산을 둘러싼 다툼은 한마디로 진흙탕 싸움이란다. 같은 핏줄을 나눈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예외가 아니거든. 종종 뉴스에서도 보던 그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났을 뿐이었다.
다만 우리에게 일어난 그 일은 좀 더 빡세게 다가왔지. 아빠를 원망하는 그들의 마음까지 보태져서 말이다. 한 번도 얼굴도 보지 못한 엄마와 너에 대한 원망까지 더해졌을 수도 있겠지 싶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엄마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반대로 엄마와 너는 아빠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다. 네가 영웅이라고 말할 정도로. 마지막에 그 환상이 살짝 깨지긴 했지만 말이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기 2주일 전쯤엔가 떠났던 여행에서 아빠가 그런 말을 했었지.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우리 세 사람이 한 가족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너는 아빠의 그 말을 듣고, 아빠가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막상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너는 그렇게 큰 쇼크를 받는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그 쇼크는 두고두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쳤지만 말이다.
소송이 진행되면서 그들이 계속 더 많은 재산을 요구할 때, 엄마는 이런 생각을 했단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행복하게 살았던 대가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지 못한 대가로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면, 그게 만약 보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엄마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단다. 그게 무엇이든, 판사의 판결을 따르기로 했다. 설사 그게 엄마에게 불리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딸아,
때론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주눅 들게 하고 무력감에 시달리게 한단다. 그런데 또 지나놓고 보면 그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성장시켰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단다.
그건 마치 하나의 쇳덩어리를 불로 달구고, 망치로 연마해서 쓸모 있는 기구를 만드는 과정과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러니 우리도 지금 '쓸모 있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너와 엄마에게 지금과 같은 고통과 시련의 세월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마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 인생에 정말로 귀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엄마도 참 오랫동안 무력감에 시달렸다. 원망도 했지. 하늘도 원망하고 그들도 원망하고, 아빠도 원망하고, 심지어 엄마의 인생과 엄마 자신까지 원망했다.
하지만 그게 아무 소용 없는 짓임을 나중에 깨닫게 됐다. 그런 원망을 하면 할수록 모든 게 더 꼬여만 가는 것 같더구나.
무엇보다 엄마의 꼬인 인생이 네 인생까지 망치게 할까 봐 엄마는 많이 두려웠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엄마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사했지. 엄마의 지난 삶과 너를 포함해서 엄마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기 시작하자 일이 오히려 풀리기 시작하더구나.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엄마가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좋지 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서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아빠가 너에게 재혼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끝까지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란다. 네가 대학갈 무렵 얘기할 계획을 갖고 있었지.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다. 그 누구도!
딸아,
오늘 글을 보면서 너는 아빠 생각에 마음이 많이 저리겠구나. 하지만 우리에게 또 다른 희망이 생겼음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 희망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꾸나.
사랑한다.
2024년 6월 25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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