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을 뻔한 경험들
딸아, 여행길은 힘들지 않았니?
아픈 몸으로 캐나다까지 가기 쉽지 않았겠다. 그것도 예정일보다 며칠 늦게 갔으니,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너는 이번에도 캐나다 연수에 늦게 참석했다. 매번 '늦는 아이'라는 글을 지난주에 썼는데, 진짜로 늦어버렸으니, 엄마가 말을 잘못해서 그런가 싶은 마음도 언뜻 들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얘기가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 늦게 간 이유는 아파서였지. 캐나다로 출발하기 하루 전날, 너는 전화를 걸어서 비행기 예약 날짜를 변경해 달라고 했다. 몸이 아파서 갈 수가 없다고. 게다가 숙제까지 밀려 있다고 했지.
그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네 잠긴 목소리가 어찌나 힘들어 보였던지. 가까이 있었다면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먼 거리라 달려가지도 못하고, 심하면 응급실에 가라는 말 밖에 못해줬다.
알고 보니 그 전주에 너는 무리를 했더구나.
학기 마지막이라 마무리해야 할 숙제도 많은데, 아르바이트까지 매주 3회씩 해야 했으니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매니저가 네가 한 작은 실수에 대해 엄청나게 야단을 쳤다고 했지. 거의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하면서.
너는 너무 서러워서 2시간 넘게 울었다고 했던가? 저녁 9시에 아르바이트가 끝났는데, 집에도 못 가고 울었다는 말에 엄마는 가슴 한구석이 미어터지는 느낌이었다.
학비야 엄마가 마련해 주지만, 엄마가 주는 생활비는 늘 부족했지. 한창 멋 내기 좋아할 나이의 네가 옷이며 화장품 하나도 제대로 못 살 정도니 말이다. 그 부족한 용돈을 보충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 너는 불평 한마디 없이 재미있다고 하더니, 그런 일이 생겼더구나.
엄마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너를 안심시키는 것뿐이었다.
캐나다에 늦게 가는 것도 괜찮고, 숙제를 늦게 내는 것도 괜찮으니 우선 잠부터 자라고 했지. 몸살감기엔 푹 쉬는 것 말고 답이 없으니 말이다. 너는 며칠 동안 설움과 분노, 걱정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더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너에게 감정을 쏟아 낸 그 매니저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잊어버리라고 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잘 풀리지 않는 일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남자친구에게 차였다거나, 생리 중일 수도 있다고 했더니, 너는 깔깔 웃더라.
그래, 그렇게 웃으면서 넘겨야지 어떡해. 내가 상대방에게 분노하는 마음을 가지면, 상대방이 아니라 내가 힘든데. 그러니 털어버릴 방법을 찾아야지.
다행히 너는 잘 털어버린 것 같더라. 다음 날 전화해서 몸이 훨씬 좋아졌다고 했지. 목소리도 밝아 보이더구나. 덕분에 엄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고.
캐나다 토론토에는 결국 예정보다 1주일 늦게 도착하게 됐지만, 다행히 네가 비행기 티켓을 실제 연수 시작일보다 3~4일 일찍 도착하도록 끊는 바람에 연수 일정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지. 참 다행이다.
엄마는 자식이 너 하나뿐인 데다 아빠도 없어서 평소에 이런저런 걱정이 많을 것 같지만, 사실 별 걱정 안 하고 산다. 네가 공부는 잘할까, 어떤 직장에 갈까, 결혼은 잘 할까 같은 걱정은 거의 안 하는 편이지.
그건 엄마 성격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너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다. 엄마는 네가 네 앞가림은 잘 할 것으로 믿기에, 네가 무얼 선택하고, 무슨 일을 하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엄마의 유일한 걱정이라면, 네가 아플까 하는 것이다. 엄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들이 가장 걱정스러워하는 게 자식의 건강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너는 꽤 여러 차례 건강 문제로 엄마를 놀래키긴 했구나.
네가 예닐곱 살 때, 비행기 안에서 죽을 뻔했던 일 기억나니?
그때가 아마도 우리가 독일에 갔다가 타이완으로 돌아오던 때였던 것 같다. 우리는 새벽 5시쯤엔가 하노버에서 비행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몇 시간을 대기하다가 '중화항공'(China Airline)으로 타이완으로 오는 길이었다.
새벽부터 움직였기에 다들 피곤했다. 엄마는 비행기에 타자마자 설핏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네 아빠가 "한나, 한나!"라면서 다급하게 너를 부르더구나. 눈을 떠서 보니 너는 목이 옆으로 꺾인 채 입술이 새파래져 있었다. 입에는 살짝 거품이 나온 채 거의 숨도 쉬지 않는 상태였고.
아빠가 비상벨을 누르고 승무원을 부르면서 "아이가 죽어가요.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외쳤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모습으로.
놀란 승무원이 와서 아이를 비행기 뒤편으로 옮기고, 기내 방송으로 의료진을 부르고...비행기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지. 승무원은 입술이 새파래진 채 축 늘어진 너를 보고, 너무 놀라 울음을 터뜨리더구나.
비행기에는 다행히 소아 응급전문 독일 의사 한 명과 타이완 의사 한 명이 있었다. 그들이 심폐 소생술을 하고 인공호흡을 한 덕분에 너는 한참만에 긴 숨을 몰아서 내쉬더구나. 새파랬던 입술에 서서히 붉은 기가 돌면서 말이다.
그 시간이 10여 분이었는지, 30여 분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어쩌면 아주 순식간 같고, 또 어쩌면 아주 긴 시간 같았다.
그런데 웃기는 게 뭔지 아니?
네가 의사들과 비행기 승무원들, 그리고 호기심 많은 다른 승객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응급처치를 받고 있을 때 엄마는 네 곁에 없었다. 아빠는 물론 너를 안고 갔기에 바로 네 곁에 있었지.
엄마는 구경꾼들 틈에 끼어 그 응급처치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단다. 그것도 첫 번째 줄이 아니라, 두 줄 정도 뒤에서.
네가 긴 숨을 토하면서 내뱉은 첫마디가 "엄마!" 였을 거야. 그제야 주변 사람들도 "엄마는 도대체 어디 있느냐"라며 나를 찾더라.
나는 그때 쭈뼛거리면서 "제가 엄마예요!" 하면서 사람들을 비집고 너한테 다가갔던 것 같아. 나는 그때의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엄마라는 사람이 왜 그렇게 구경꾼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딸의 응급처치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엄마 답지 못한 행동에 많이 부끄럽고, 또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밤비'라는 사슴 관련 영화를 보면서 그 이유를 추측하게 됐단다. 밤비라는 꽃사슴이 갑자기 사냥꾼을 만났을 때, 거의 얼어붙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더구나.
그때 엄마의 반응도 아마 밤비의 반응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엄마는 그 순간 '이렇게 아이를 잃을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에 질려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그때 네가 정신이 들면서 "엄마"라고 불러준 것은 두고두고 감동이었다. 그때 네가 "엄마"라고 불러주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엄마 자리에서 '아웃'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비행기에서 그 해프닝을 겪고, 우리는 의사의 조언대로 너를 큰 병원에 데려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게 했다. 주로 뇌파 검사였지.
병명은 '수면 간질'(Nocturnal Epilepsy)이라는 거였다. 보통 2세~14세까지의 아이들이 밤에 잠을 자는 중에 생기는 간질 증세라는데,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더구나.
그리고 네 증세는 약을 먹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서 따로 약 처방도 없이 지켜보자고만 했고. 비행기에서 상황이 그렇게 심각해진 이유는 아마도 불편한 자세 때문에 기도가 막혀서 그랬을 거라는 것 외에 특별한 원인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우리가 찾아낸 합리적 추론 하나가 있었다. 당시 네가 닌텐도 게임을 너무 많이 했다는 거지. 프랑크 푸르트 공항에서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너는 아마 닌텐도 게임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을 거야. 가뜩이나 잠도 못 잔 상태에서 말이야.
엄청 피곤한 상태에서 전자파에 과다 노출됐으니 너의 뇌는 쉴 틈이 없었겠지. 게다가 비행기 자체가 전자파 덩어리란 얘기도 있으니, 뇌의 일부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그게 우리의 추론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우리의 이런 추측성 원인 분석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과성'까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름 '연관성'은 있다고 본거지.
그때 이후로 우리는 네 게임시간을 제한했고, 무엇보다 가급적이면 밖에서 나가서 놀도록 독려했다.
그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너의 증세가 그야말로 일시적인 현상이었던지, 그때 이후로 너는 한두 번 가벼운 발작 증세를 일으키긴 했지만,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늘 걱정이긴 했다.
미국 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잠을 자는 첫 캠프를 할 때는 그 걱정 때문에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담임한테 얘기했더니, 잘 지켜볼테니 걱정 말고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니, 친구들에게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때 너는 호기심에 가득 찬 네 친구들에게 너의 병에 대해 아주 재미있게 설명을 했다고 하더구나. 손발과 몸을 떨면서 눈을 까 뒤집고 넘어가는 모습을 실감 나게 보여줬다던데?
나는 나중에 담임한테 그 얘기를 듣고, 한시름 놓았단다. 엄마는 네가 병을 가진 것 자체보다 그 병 때문에 의기소침해 지지 않을까가 더 걱정이었거든.
그런데 네가 네 병에 대해 의기소침해 하기는커녕, 그런 식으로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으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본거지.
그 병은 그 이후로 정말 별일 아닌 일이 되어 버렸지만, 엄마는 여전히 네 건강만 생각하면 그때의 일이 떠오르면서, 건강을 제1순위로 삼게 되었지.
그런데 너는 또 한 번 네 건강 문제로 엄마를 놀래게 했다.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2021년 8월. 너는 프랑스에 있는 친구 집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거의 1년 전부터 벼르고 벼른 데다, 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기념으로 친구를 보러 가겠다는 너의 고집을 엄마는 꺾지 못했다. 1년 동안 설득했지만 실패했던 거지.
게다가 당시 유럽은 코로나에 대한 경계가 조금 느슨해져 있던 시기기도 했던 터라, 네 친구 엄마의 간절한 부탁도 있고 해서, 엄마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너를 보냈는데... 한국으로 출발할 날짜를 하루 앞두고 네가 전화를 했더구나.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와서 집에 오지 못한다고.
그때는 코로나에 걸리면 큰일 나는 줄 알던 때였는데, 한국도 아니고 프랑스에서 코로나에 걸렸다니.
그때 엄마의 마음을 뭘로 표현할지 모르겠다. 네 친구의 엄마는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우리가 잘 케어하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또 가족을 잃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그저 눈물만 나왔다.
그리고 너를 붙잡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내 어리석은 판단을 한탄했다. 무엇보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네 아빠 얼굴을 어떻게 볼지 참 막막하기만 했다.
사실 네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건강을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올려놓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사람이었기에, 한동안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
그것 때문에 그렇게 건강에 집착하고 있었는데, 딸을 사지로 몰아넣은 엄마 꼴이 되어 버렸으니, 그 후회가 얼마나 극심했을까.
가슴을 쥐어뜯고 또 뜯었다.
다행히, 참으로 다행히도 너는 며칠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와 코로나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하더구나. 처음에 했던 PCR 테스트가 잘못됐던 건지, 네 친구의 엄마가 케어를 잘 한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정말로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린 것 같다. 물론 네 아빠에게도. 거의 매일 네 아빠한테 비는 마음이었거든. 제발 당신 딸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는 기도를.
그렇게 무사히 돌아왔건만, 너는 시드니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진짜로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지.
엄마가 너를 데려다주고 돌아와 채 2주가 안된 시점이었던가? 사실 그때 엄마도 코로나 양선 판정이 나왔었다. 그런데 엄마는 증상이 거의 없는 데도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와, 솔직히 검사가 잘못된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너한테서 코로나에 걸렸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그 검사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알게 됐다.
문제는 증상이 거의 없었던 엄마와는 달리, 네 증상은 꽤나 심했다는 거지.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고, 기침도 심하고 온몸도 아프고...
그것보다 더 가슴 아팠던 건 네가 학교 측에서 제공한 '코로나 격리 숙소'에 감금되어 있다시피 했다는 점이었다. 아무도 방문할 수도 없었던 그곳에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것도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생긴 일이라 친구도 없었을 때였는데 말이다.
너는 매일 전화를 했고, 나는 전화로 너를 위로해 주는 수밖에 달리할 일이 없었지. 다만 매일 밤 너를 위한 기도는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매번 네가 심하게 아플 때마다 네 옆에 있지 못했구나. 어쩌면 그래서 너는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프면서 크는 나무'란 말도 있지만, 너는 진짜로 아프면서 많은 일을 경험하고 또 헤쳐 나오는 듯하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엄마가 건강에 좀 과하게 집착하는 것 같긴 하다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니 너도 이해는 하지? 덕분에 엄마는 다른 것에는 후하지 않니. 네가 '어디서 뭘 해도 상관없으니, 건강하게 살아만 있어다오'가 엄마의 바람이니 말이다.
딸아, 캐나다에 가서는 부디 아프지 말기 바란다. 그리고 건강한 얼굴로 한국에서 보자꾸나.
2024년 6월 20일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