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소공 Jun 13. 2024

너무 늦었다고 고민하는 너에게!

자신만의 때! 


사랑하는 딸, 



캐나다 연수때문에 바쁘겠구나. 이번엔 늦지 않게 잘 준비했지? 그게 뭐든 말이다. 


너는 지난번에 "엄마, 나는 뭐든지 너무 늦게 준비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 그때 아마 인턴 준비를 늦게 해서 제대로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한 말이었다. 


그때 엄마가 한 대답은 "괜찮아. 뭐든지 다 때가 있는 거야. 아직 적당한 때가 오지 않았다고 보면 돼"라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기억나니?


엄마가 너를 위로해 주려고 한 말이기는 하지만, 엄마는 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고 보면 너는 매사에 조금씩 '늦는 아이'가 맞네. 태어날 때도 예정일보다 2주 정도나 세상에 늦게 나왔고, 말문을 트는 것도 다른 아이들 보다 꽤 많이 늦었다.  


심지어는 영어 알파벳 글자를 익히는 것도 늦었네.





지금도 생각난다. 네가 타이완에서 미국 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 나서 1개월 후쯤이던가? 네 담임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서 갔더니, 그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글자를 전혀 읽을 줄 모른다. 집에서 가르치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엄마는 당당하게 "아니, 그건 학교에서 가르치는 거 아니에요?"라고 대답했지. 선생님은 살짝 기막혀 하면서도 "큰 문제는 아니지만, 학습 진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라고 주의를 줬다. 집에서 책을 많이 읽어 주라고 하면서. 


엄마는 물론 집에서 책을 많이 읽어 줬지. 그렇게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1개월 후쯤, 이번에는 카운슬러가 엄마를 부르더구나. 그 카운슬러는 네 담임 선생님보다 더 강경하고 더 기막혀 했지. 


도대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어디를 다녔는지, 그곳에서 뭘 했는지 묻더구나. 나름 예의를 갖춘 말이긴 했지만, 네가 글자를 모르는 것이 부모인 우리 탓인 것 마냥 비난하는 뉘앙스가 숨어 있었다.  


나는 "아이는 독일 유치원에 다녔고, 그 유치원에선 학교 입학 전까지 글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안다"라고 대답했지. 


그건 사실이었다. 너는 미국 학교 입학 전까지 독일 유치원에 다녔고, 독일 유치원에선 학교 입학 전까지 글자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 


엄마도 아빠도 그 원칙에 대해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감하고 당연하다고 여겼지. 왜냐하면, 엄마도 아빠도 학교에 가서야 글자를 깨우친 세대였거든. 


나중에야 알았다. 미국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미국 학교 유치원을 거쳤고, 그 유치원에선 학교 입학 전에 전부 글자를 가르친다는 사실을. 


그러니 너는 다른 아이들이 다 아는 글자를 모르는 채 학교에 갔던 거지. 


어쨌거나 그때부터 학교에선 방과후 수업 교사를 따로 붙여주더구나. 글자를 가르치는 '특별수업' 말이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는 모자라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나머지 수업'이라 불렀는데,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엄마는 마음이 착잡해질 때도 있었다. 


아니, 내 딸이 어떡하다가 나머지 수업을 받나 싶어서 말이다.  


너는 아마 2개월 동안 그 특별수업을 받았던 것 같다. 1학기가 끝나기 전에 더 이상 특별수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소식을 학교에서 전해 왔으니까.  


엄마는 기뻤다. 그리고 미국 학교에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것에 경의를 표했다. 





2개월이 끝나고 나서 네 영어 실력은 일취월장하지 않았나 싶다. 


네가 글자를 모르던 시절 너의 영어 노트는 그저 암호에 불과한 영어 알파벳이 나열되어 있었다. 아마도 영어 쓰기 수업에 적은 글자였던 것 같은데. 어떤 때는 노트 한 면이 A로만 적혀 있기도 했고, 어떤 때는 R로만 적혀 있기도 했었지(응, 왜 R이었지? 으르렁거리는 소리였나?)


그런데 2학기부터 너는 '작문'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거든. 글짓기 말이다. 그리고 2학년 1학기가 끝나기 전 어느 날 네 글이 교내 문예지(?) 같은 데 실렸다고 가져왔더구나.


그 글의 내용이 뭐였는지 아니?




바닷가 오두막집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어린 딸, 이렇게 3명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불치병에 걸렸다. 아빠도 다쳐서 움직이기 쉽지 않다. 


그래서 바다를 무서워하는 어린 소녀가 아픈 엄마를 위해 바닷속 깊은 곳에 들어가 엄마를 살릴 '비밀의 약'을 구해온다는 스토리였다.  


그 스토리 속에서 어린 소녀는 처음에는 바닷물의 공포를 극복해야 했고, 다음에는 여러 바닷속 괴물과 사투를 벌여야 했지. 그리고 결국 바닷속에 들어가 그 비밀의 약을 구해왔다. 


그 비밀의 약은 '황금 미역'이었다. 그 황금 미역을 끓여 먹은 엄마는 병이 나았다는 스토리였지.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엄마는 네가 쓴 이 스토리를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놀랍고 감동적이었지. 


이게 내 딸이 쓴 게 맞아? 아니 1년 전까지만 해도 글자조차 모르던 애였는데? 


게다가 그 스토리 전개와 상상력이라니! 효녀 심청이 따로 없었지. 황금 미역은 또 어떻고! 


엄마가 미역국 끓여 주면서 미역국이 몸에 좋다고 얼마나 '구라'를 쳤으면 미역국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겼을까 싶다. 물론 미역국이 몸에 좋은 것은 맞다만. 너도 아빠도 미역국을 좋아했지. 그래서 자주 끓였고. 


어쨌거나 오늘 글의 주제는 미역국이 아니니, 미역국 얘기는 그만하고.





너는 매사에 '늦는 아이'가 맞다. 


태어난 것도, 말을 시작한 것도, 글을 배운 것도 늦었다. 대학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 늦게 갔지. 


하지만, 그 늦음이 너의 성장을 방해하기 보다 오히려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더 단단해지기 위해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거지.  


그러고 보면 엄마도 여러 가지로 늦은 게 많았다. 결혼도 늦었고, 출산도 늦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것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란다.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엄마는 늦게 했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지. 


너 또한 네 경험에서 알 수 있을 거다. 글자를 늦게 배웠지만, 그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좀 더 절실하게 배웠겠지.  


엄마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때'가 있다고 말이다. 


그때를 어떻게 아냐고? 


때가 되면 알게 되지. 내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때, '내 영혼이 갈구하는 그때'가 가장 적당한 때다. 


엄마가 지금 이렇게 늦은 나이에 글을 쓴다고 설레발치는 것도, 다른 사람의 기준에선 너무 늦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만, 엄마로선 이때가 가장 적당한 때라고 본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라는 말도 있거든. 


그러니 딸아, 


너무 늦었다고 자책하지 마라. 자신의 때를 다른 사람의 기준, 즉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말았으면 좋겠다. 


적당한 때는 네가 필요로 할 때 찾아 온단다. 방향만 잃지 않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다. 좀 늦더라도 말이다! 


사랑한다, 딸아!  


2024년 6월 13일, 


엄마가



#딸에게쓰는편지 #모녀관계 #인생에늦은때란없다 #미역국 #황금미역 #미국학교 #글쓰기 #글자 #골드바 





이전 12화 늘 불안한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