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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Aug 08. 2019

토니 모리슨을 추모하며

토니 모리슨이라는 이름에는 최초의 흑인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노벨문학상이 유럽 중심이라고들 하지만 세계적인 권위의 문학상인 것만은 틀림없다. 세계가 인정할 만한 문학적 성과를 이룬 작가라야 만 받을 수 있다는 그 상을 1993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의 문제를 줄기차게 다뤄왔다. 즉 토니 모리슨이 이야기하는 흑인 여성 문제는 인류 모두가 생각해 볼 문제라는 뜻일 수도 있다.  


어째서 흑인 여성의 문제만 다루느냐, 당신은 그보다 훨씬 더 폭넓은 예술가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토니 모리슨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첫째, 이것이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고, 둘째, 그렇다면 나마저 백인 남성 주류 작가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흑인 여성의 문제는 결코 편협하거나 사사로운 주제가 아니다. 토니 모리슨은 자기가 꼭 써야 할 이야기를 아는 작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빌러비드'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124번지는 원한이 서려 있었다. 아기가 뿜어내는 독기가 충천했다. 집안의 여자들은 다 알고 있었고, 아이들도 모르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식구들은 각자 나름대로 그 독기를 참고 지냈지만, 1873년쯤이 되자 희생자는 시이드와 딸 덴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납량특집을 연상시키는 도입부는 착각이 아니다. 토니 모리슨의 소설들에는 아주 자주 유령이 출몰하고 '빌러비드'에도 유령이 나온다. 그 원한 맺힌 유령의 이름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의 빌러비드이다.


토니 모리슨의 소설 '빌러비드'는 1856년에 미국 신시내티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한 흑인 여성이 노예 사냥꾼에게 쫓겨 다시 붙잡힐 위기에 처하자 자기 아이의 목을 베어버린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지 못하고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그래서 자신의 손으로 자기 아이를 살해하고 그 묘비에 빌러비드라고 새긴 시드. 지독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해서 시드의 행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토니 모리슨은 쉽게 비난하지도 쉽게 용서하지도 않는다. 실수했든 잘못했든 어리석든 교활하든 한 사람 한 사람을 냉정하지만 차갑지 않고 따뜻하지만 뜨겁지 않은 눈길로 바라본다. 시드의 어린 딸 덴버는 한을 품은 유령에게 점령당한 124번지에서 세상으로 나와 가족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다. 묵직한 주제를 현실과 환상을 뒤섞어 매혹적인 목소리로 풀어내는 토니 모리슨은 슬프고 참혹한 사연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받지 못한 자들의 과거를 하나하나 보듬고 그들의 악몽을 쓰다듬고 위로하여 사랑받은 사람 빌러비드로 다시 기억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사랑에 대해 글을 쓴다고 말한다지만 사실은 언제나 배신에 대해 쓰고 있다고 말하는 토니 모리슨. 토니 모리슨은 참혹한 역사를 통해 살아남은 자의 가장 모성적인 목소리로 잘못된 역사를 다시 이야기한다. 잊힌 역사가 유령처럼 떠돌면서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기억하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과 유령이 공존하는 토니 모리슨의 소설들은 그 과거로부터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장 참혹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작가 토니 모리슨이 8월 5일 세상을 떠났다.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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