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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Feb 22. 2019

오직 나만을 위한 한 권의 책을 갖는 일

일기에 관한 책들




한 해가 끝나고 시작될 무렵이면 사람들은 새해를 위한 다이어리를 고르느라고 고민한다. 다이어리 시장 규모가 꽤 크고, 어떤 것은 웬만한 책의 판매 부수보다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은 책을 읽기보다는 쓰기를 원하는 것인가. 이 생각은 조금은 과장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다이어리를 새로 산다는 건 한 해를 알차게 보내겠다는 결심의 연장선상인 동시에 무언가 남기고 싶은 욕구가 아닐까.


다이어리 꾸미기 팁에 관한 책도 나오는 걸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기록에 보람과 애착을 가지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다이어리는 자기 혼자 쓰고 보는 것인데 뭘 그렇게 예쁘게 꾸미기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어쨌든 성실하게 기록된, 아름답고 효율적인 다이어리를 갖고자 하는 욕망은 자신과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결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가 쓴 일기는 자신만을 위한 기록인 동시에 자신만을 위한 예술이 될 수도 있겠다.



외 면 일 기  J o u r n a l  E x t i m e


새로운 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예술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니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외면일기'가 떠오른다. '외면일기'는 투르니에가 틈틈이, 아니 끊임없이 기록해 놓은 30여 권의 수첩 속에서 추려낸 글들을 월별로 묶은 메모 노트 같은 것이다.


일단 일기는 내면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 제목이 '외면일기'인 이유는 투르니에가 어떤 학교의 어린이들에게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매일 큼지막한 공책에다가 글을 몇 줄씩 쓰십시오. 각자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내면의 일기가 아니라, 그 반대로 사람들, 동물들, 사물들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를 써보세요. 그러면 날이 갈수록 여러분은 글을 더 잘, 더 쉽게 쓸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특히 아주 풍성한 기록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노년의 작가는 갑자기 떠오른 작품의 아이디어, 누군가를 만나서 한 아주 가벼운 일부터 나눈 대화, 철 따라 변하는 자신의 집 주변의 풍경, 날씨,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기억해둘 만한 누군가의 말 같은 것들을 노트에 차곡차곡 기록해 놓았다. 이 책에는 날짜가 없지만 작가가 손으로 직접 쓴 노트에는 날짜, 어쩌면 시간까지도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메모와 일기가 모여 풍성한 기록의 수확으로서 '외면일기'라는 책이 된 것이다.


'외면일기'를 읽다 보면 흩어지는 시간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생각들을 붙들어놓고 싶은 욕심이 샘솟는다. 몇 해 전에 나는 그동안 써놓았던 다이어리를 한꺼번에 버렸다. 특별한 일이라고는 없었고 좋은 일도 없어서 미련이라고는 남지 않을 듯했고, 과거를 붙들고 사는 것 같은 기분도 싫고, 내 시간을 나조차도 돌아볼 일이 없을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좀 아쉽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그 시절 내가 무얼 하면서 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록하지 않는다고 살아온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록되지 않으면 기억되지도 않는다.


다이어리를 펴고 계획을 잔뜩 세우면서 페이지를 차곡차곡 채워야지 하는 결심을 또 해야 할 시간이 왔다. 하루 중 잠시라도 차분히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페이지로 쌓이는 것은 무엇보다 매력적인 일이 아닌가. 오직 나만을 위한 한 권의 책을 갖는 일, 그것도 해마다 한 권씩 갖게 되는 것이 다이어리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관련 책 추천 목록


1.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2.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3. 불렛 저널, 라이더 캐롤

4. 사적인 다이어리 꾸미기, 푸이친

5. 하루한페이지 다이어리 꾸미기, 너도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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