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우성은 경찰서로 복귀했다. 병가 동안 그는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고 무엇보다 책을 좀 읽었다. 어떤 면으로는 무디고 어떤 면에서는 날카로운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나날이었다. 같이 병가를 낸 파트너는 아직 복귀 전이었다. 우성이 몸을 더 다쳤다면 파트너는 마음을 더 다친 것 같았다.
여전히 회복 중인 우성에게는 비교적 간단한 사건 처리들이 주어졌다. 삶은 있으나 죽음은 없는 사건이길 바랐으나 죽음은 도처에 있었다. 우성은 경험 많고 실력 있는 형사답게 일을 처리했다. 여지가 없는 사건은 바로 처리했고 보강이 필요한 사건은 사이드에 따로 두었다가 구체적인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이 사건은 오래도록 사이드에 놓여 있었다.
형사님, 그건 언제까지 그렇게 둘 거야? 보다 못한 동료 형사가 물었다. 그렇게 복잡해?
간단해, 간단한데…
복잡한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간단해서 문제라고 우성은 생각했다.
그럼 뭐가 문제야?
동료는 사건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을 테지만 그 순간 우성은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엘리트인 동료를 아직도 복귀하지 못하게 하고 베테랑 우성을 한직에 머물게 하고 있는 이전 사건은 아주 복잡했다. 그때 두 사람은 너무 큰 그림을 그렸고 돌이켜보면 그 덕분에 많은 것을 해결했지만 그에 따른 희생과 손실도 컸다. 이 사건은 그런 종류의 큰 그림이 그려지는 사건이 아니었다. 그저 뭔가가 명쾌하지 않을 뿐이었고 그 뭔가의 실체가 여전히 파악되지 않아서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얼토당토않다고 하겠지만 무엇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런 종류의 사건일 수도 있다는 촉이 우성에게 왔다.
아무튼 어떻게든 하세요. 보고 있는 내가 다 힘드네.
이거 내가 수사해 봐도 돼?
직접 한다고요? 왜요? 살인 사건도 아니고 조직범죄도 아니고 형사님이 맡기엔 너무 소소하지 않아요?
소소한 사건이 어딨어? 아니, 소소하니까 내가 할게. 해도 되지?
네, 그러셔요.
그렇게 해서 우성은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발로 뛴 사건으로부터 근 1년, 복귀 후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여자가 남자를 스토커로 신고한 사건이었다. 남자는 그 사실을 알고도 연락하다가 긴급조치로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다. 남자가 스토커라는 여자 쪽 주장은 일관되고 증거가 있었다. 여자랑 연애를 했다는 남자의 주장은 일관되지만 증거가 없었다. 여기까지는 어떤 측면에서는 전형적이었다. 문제는 지금 남자가 정신적인 문제로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용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피의자가 제대로 된 의사 표현을 할 수 없으며 본인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바를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태였다.
우성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사건을 이대로 마무리하기에 개운하지 않았다. 여자와 남자는 둘 다 소설가였다. 여자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유부녀였고 남자는 미혼이었다. 우성이 보기에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은 비슷한 나이와 같은 직업이라는 사실밖에 없었다. 사는 곳도 달랐고 출신 지역도 달랐고 하물며 등단 매체나 책을 낸 출판사도 달랐다.
두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만난 것일까. 일단 소설가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 어떤 식으로 친분을 유지하는지 알 수 없었다. 우성은 이 사건이 흥미로웠는데 어쩌면 병가 내내 주야장천 읽은 소설 때문인지도 몰랐다. 탐문 수사 결과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5년 전 작가들의 크루즈 문학 행사였다. 우성은 그들의 첫 만남부터 차근차근 추적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소설가 한현정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