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작업실
우성은 미리 약속을 하고 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벨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고 한 작가가 인터폰으로 확인 후 문을 열었다. 우성은 작가의 작업실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벽이란 벽은 다 책장이었고 그 책장엔 책이 빼곡했다. 유일한 창을 향해 책상이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동그란 테이블에 의자가 셋 있었다. 한 작가는 그 테이블로 안내했고 우성이 앉았다.
뭐 드릴까요? 차, 커피, 물…
물 주세요.
한 작가가 작은 300밀리리터 생수병을 냉장고에서 꺼내 와서 컵과 함께 놓는 동안 우성은 빠르게 작업실을 훑어보았고 마지막으로 테이블에 놓인 책을 보았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우성도 저 책을 읽었다. 내용이 뭐였더라 하고 생각하는 찰나 한 작가가 말했다.
전화로 남 작가와 여 작가 일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떤 일 때문인가요?
‘그런데’와 ‘어떤 일’ 사이의 간격이 문제라고 우성은 생각했다.
남 작가와 여 작가가 5년 전 크루즈 행사에서 처음 만난 거 같더라고요. 맞나요?
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작가가 대답했다.
확실한가요?
네. 그건 확실합니다. 저도 그 행사에서 두 사람을 처음 보았고 두 사람도 그랬어요. 크루즈 일이라면… 하필 왜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그 크루즈 행사에 참가한 작가는 스무 명이 넘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객실이 크게 네 구역 정도로 분산되었던데 작가님은 두 사람과 같은 구역이시던데요.
그 구역에도 여러 명이 있었어요. 그분들은 다 만나 보셨나요?
네, 형편이 닿는 대로.
형편이라면…
주로 전화 통화를 했지만 몇몇 분은 직접 만나기도 했어요.
우성은 작업실까지 찾은 건 처음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우성은 한 작가를 만나고 싶었다. 한 작가는 우성이 즐겨 읽는 추리물을 쓴 적이 있었다. 추리소설을 쓴다고 추리 능력이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작가의 실제 능력이 궁금했다. 남다른 뭔가가 있지 않을까.
크루즈에 승선하신 작가님들을 인터뷰하셨다니 아시겠지만 제가 뭐 별다른 이야기를 해 드릴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여기까지 직접 오셨는데…
한 작가가 ‘직접’에 강세를 둔 듯하게 느껴지는 건 우성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남 작가와 여 작가, 정 작가, 이 작가, 서 작가, 그리고 한 작가님까지 소설가 여섯 명이 유난히 친하게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설가 여섯 명이 어울린 거 맞아요. 그 크루즈의 테이블 최대 정원이 여섯 명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우연이죠. 사실 여 작가는 자주 어울리지는 않았어요. 그 사람들이 말하는 건 여섯 명일 거예요. 오래된 일이니 아마 여섯 명이 어울렸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죠. 실제로 여 작가가 합석을 한 적도 있긴 했고요.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여 작가가 남 작가를 스토커로 신고했습니다.
그랬군요.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그래 보였나요?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려고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면서 사니까요.
그 별의별 상상에 하필 저런 상상이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우성은 궁금했다.
남 작가는 연애를 했다고 주장하고 여 작가는 스토킹을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가 남 작가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요.
한 작가는 덤덤했다. 우성이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이번에도 놀라지 않으시네요.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남 작가가 멘탈이 좀 약한 사람 같아 보였어요. 여 작가에 비해서. 5년 전에도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도 입원까지는…
남 작가가 여 작가에 비해 멘탈이 약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우성은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으니 남 작가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우성이 만나 본 여 작가는 연약한 여자였다. 두려움에 떨며 진술도 제대로 하지 못해 남편이 거의 모든 이야기를 대신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한 작가의 멘탈은 어느 정도일까. 한 작가의 추리소설에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도 한없이 냉정해서 소시오패스로 의심받는 탐정이 나온다. 물론 그 인물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배경과 사정이 있다.
형사님은 두 사람의 그런 관계가 크루즈 행사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럴지도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는 남 작가나 여 작가한테서 어떤 말도 들은 것이 없어요. 스토킹이든 집착이든 사랑이든. 두 사람과의 교류는 크루즈까지가 끝이었어요. 아니, 그 전에 이미 여섯 명, 아니 다섯 명이 어울린 건 벌써 끝났던 걸로 기억해요.
이유는요?
마지막이니까 다들 마음이 바빠졌겠죠. 누군가는 방에 칩거해서 작품을 쓰는 쪽을 택했다면 누군가는 이미 작품을 끝내고 즐기는 쪽을 택하거나 작품 따윈 집에 가서 써도 돼,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택했겠죠. 작가들이 자기 세계에서 혼자서 일하는 외로운 존재들이라 그런 식으로 어울릴 기회가 잘 없어요.
외로운 존재들이라…
우성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수첩에 그렇게 메모를 하고 있었다.
막판에는 여섯 명이 어울리지는 않았다고 했는데 그럼 그 이하의 인원은 계속 어울렸다는 이야기인 거죠?
남 작가와 여 작가가 어울리지 않았던 거예요. 저희 네 명은 마지막까지 잘 지냈어요.
남 작가와 여 작가가 빠졌다… 그때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글쎄요. 사건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마당에 오래전 일이라, 그게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형사님이 진짜 궁금하신 게 뭔가요? 뭘 의심하시는 건가요?
남 작가는 여 작가의 스토커가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