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친하지도 않은 두 사람의 관계를 제가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된 건 크루즈 행사 한참 후 아닌가요? 저희는 그들과 그런 시간을 공유한 적이 없어요.
사건을 좀 더 공유해 드리면 뭔가 생각이 나실까요?
무슨 생각요? 남 작가가 여 작가에게 그때도 그랬다는 증거 같은 거요? 아니면 그때 이미 그런 징조가 보였다, 그런 거요? 저희는 소설가이지, 예언가가 아니에요. 그런데 소설가로서 그 이야기가 좀 궁금하긴 하네요.
여자의 남편은 아내가 매력 있는 여자라서 친하게 지내는 남사친들이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엄벌에 처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친한 친구는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남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처럼 잘 지내다가 어느 순간 남자가 집착하기 시작해서 고민을 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여자의 이야기일 뿐이었고 더군다나 여자는 소설가죠.
소설가라는 게 문제가 되나요?
남자 주변에는 아무도 남자가 주장하는 연애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본래 남자가 성격이 좋고 사람을 좋아해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친분을 유지하는 작가들이 제법 있었지만 여자의 이름은 처음 들어 본다고 하더군요. 남자가 자랑처럼 얘기한 친한, 혹은 친하다고 주장한 소설가 몇몇의 이름을 대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친구 중 한 명이 말했어요. 그 여자는 무명이라서 듣고도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고요.
자랑처럼,이라…
그러면서 한 작가가 웃었다. 우성은 그 말도 메모했다. 자랑처럼…
웃을 일이 아닌데 왠지 장면이 그려져서요.
사실 우성은 여 작가뿐 아니라 남 작가도 처음 듣는 소설가였다. 두 사람은 출간한 책이 한 권밖에 없었다.
남자의 주변인들은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더군요.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유부녀를 좋아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여자가 보여 준 증거에 의하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한 건 명백해 보였어요. 주변인들의 저런 반응을 예상했기에 남 작가가 자신의 연애, 아니 집착을 밝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불륜이 자랑할 일은 아니니까요.
사랑은 자랑할 만한 일일까요?
네?
불륜은 사회적 판단이고 본인들은 세기의 사랑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잖아요.
아! 보통 그렇죠. 내로남불이란 말이 괜히 있겠어요.
그러네요. 그 사람들도 그저 평범한, 어쩌면 평범에도 못 미치는 그런 사람이고 그런 연애였을지도요. 설사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가 돌아섰다고 해도 스토킹한 건 명백히 잘못했죠.
하긴 그렇죠. 그런데 그게 한 사람의 말뿐이고, 남아 있는 메시지 몇 개가 다라서요.
사안이나 성격에 따라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걸 깨끗이 정리하는 성격일 수도 있는 거고, 만에 하나 불륜으로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건 정리하면서 사는 게 낫죠.
그래서 오히려 여 작가가 마지막 문자들을 남겨 놓은 게 저는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형사님, 지금 남 작가 편을 드시는 건가요?
아, 아니에요. 절대. 저는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해서 이러는 거예요.
균형적인 시각이라… 그러니까 한 명은 미친 스토킹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한 명은 미친 연애를 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한 명의 증언이 아무 효력이 없는 상태의 균형추를 맞추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계시다, 이거죠?
네, 역시 작가님이라서 정리도 잘하시고 핵심도 잘 파악하시네요.
형사님은 무얼 잘하시나요? 의심?
제가 좀 그렇죠.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라… 흥미롭네요.
아까 왜 이렇게 찾아온 거냐고 물으셨잖아요.
네.
그 구역에서는 작가님 포함 네 분이 소설가시더라고요. 그리고 소설가 여섯 분이 한달 내내 어울렸고요. 정정하죠. 정확히, 네 분에다가 플러스 한 명 혹은 두 명으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어쩌면 자신에게만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우성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자신은 아직 모른다고. 하지만 이런 생각만은 분명했다.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 더더구나 옆에 있는 사람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직도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파트너의 마음을 우성만 아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