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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Oct 30. 2024

나르시시스트의 연애 4

균형추

제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작가님은 이미 알고 있지 않으셨나요?


한 작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침묵은 긍정일까. 긍정이라면 도대체 어디까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정말 둘만 아는 이야기였다가 한 명만 진실을 진술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된 것이 맞을까. 


형사님 연락을 받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저도 알아봤어요. 이 업계가 소문이 빨라요. 다들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있으니까 빈틈을 금방 메우거든요. 그 빈틈을 전혀 다른 걸로 채우면 아예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요. 어쨌든 다들 쉬쉬하면서 발밑으로 강이 흐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처음에는 물 한 방울이던 이야기가 흐름을 만들면 어느새 강이 되죠. 


바다로 가기도 하나요?

우성은 자신이 어설픈 비유를 한 게 아닌가 생각하는 순간 한 작가가 웃었다. 

제가 왜 형사님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네? 


우성은 자신이 한 작가를 예외적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걸 이미 한 작가가 알고 있는 건 아닌지, 순간 당황했다. 


소문만 무성하고 진실은 모르겠던데요.

우리가 이렇게 만나고 있는 이유가 실은 같은 이유에서였군요.


아까 형사님은 균형추를 맞추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는 소설가로서 진실을 추적하는 형사님의 편에 서 볼게요. 하지만 사실과 상상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해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작가님.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은 남 작가와 여 작가가 5년 전 크루즈 행사로 처음 만났다는 것뿐이에요. 저희는 그 한 달의 일밖에 몰라요. 그 사람들이 5년 동안 어떤 관계였는지는 알 수가 없죠. 형사님은 이미 충분히 조사하셨겠지만요. 남 작가가 여 작가를 쫓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건 최근이래요. 여 작가가 은근슬쩍 SNS에 괴로움을 호소했고 어떤 모임에서 누군지는 밝히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집착하는 남자가 있다고 고민을 토로했다더군요. 이제 보니 그 남자가 남 작가였군요. 


마침내 소문의 퍼즐이 맞춰졌군요. 

형사님이 가지고 계신 퍼즐을 내놓으시면 저도 제 퍼즐을 더 내놓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제가 의심하는 병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기저기 파 보니 여 작가의 남편이 남 작가를 상간남으로 고소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남 작가가 여 작가가 유부녀인 것을 알면서도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이러나저러나 남 작가는 빌런이군요. 형사님, 두 사람의 SNS는 살펴보셨나요?

봤죠. 이미 지울 건 다 지웠을 수도 있지만, 별거 없었어요. 그리고 SNS잖아요? 다들 뭔가를 조금은 꾸미게 되는,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리고, 좋은 것만 자랑하는. 


그분들이 소설가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리고 사람이기도 하다는 걸요. 또 형사님의 의심의 한 축인 한때는 그런 관계였다면, 이라는 가정도요. 남 작가가 누구랑 함께했다가 없는 건 거의 둘이서 같이 있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어째서요? 


세속적인 조건으로 사람들의 급을 은연중에 나누고 인맥과 친목을 자랑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아마 5년 전 초반에는 저희들 이름도 나올 거예요. 혹시 두 사람의 소설은 읽어 보셨나요?

읽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 책은 둘이 만나기 전에 나온 거잖아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거기에도 뭔가 있을지도 모르죠. 숨겨진 욕망이라던가…


아, 그런 거요. 제가 그렇게 훌륭한 독자는 아니지만 없던데요.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에 작위적인 인물만 나오고 작가 본인은 하나도 알지 못할 세계일 것 같은 배경이거나, 왜 그런 이야기를 쓰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성은 자신이 너무 신랄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작가의 배경을 알고 소설을 읽으니 이야기에 몰입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이런 일 아니면 처음부터 관심이라고는 없을 소설들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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