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크루즈
제가 형사님께 소설을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수사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어떤 식으로?
소설도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건데 수사도 인간을 이해하는 거잖아요. 저는 오늘 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네, 감사합니다. 꼭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추천해 드린 소설의 작가들은 전부 크루즈에 타고 있었어요. 여 작가와 남 작가를 제외하고 한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요.
아, 그래요?
네, 그리고 그 소설들은 크루즈 이후에 발표한 소설들이에요.
우성은 한 작가의 테이블에 놓여 있는 책을 다시 보았다. 『살려 마땅한 사람들』. 우성은 깨달았다. 자기가 읽은 것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형사가 방문했을 때 현정은 계획한 작업을 마치고 쉬면서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후속작인 『살려 마땅한 사람들』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현정은 형사가 왜 왔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파생된 어떤 소설적 경우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5년 전 작가들이 크루즈에 승선해서 한 달을 보내는 행사가 있었다. 작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과 독특한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문학 행사였다. 스무 명은 넘었고 서른 명은 되지 않은 작가들 가운데 현정도 있었다. 누군가는 멀미로, 누군가는 불화로 정착하는 항구에 먼저 내려 하차하는 낙오도 발생했지만 전반적으로 한 달의 여정은 원만하게 흘러갔다. 나쁘지 않았다 정도의 느낌으로 기억될 한 달이 좋았다로 기억되는 건 사람들 때문이었다. 우연히 한 테이블을 차지하게 되었던 소설가들, 넷에 하나 혹은 둘. 넷은 좋았고, 거기에 더한 둘은 넷에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안겨 줬다.
크루즈에 승선하기 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어울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작가들이 혼자서 식사하고 여행했다. 그편이 작가들의 성향에 맞았고 행사의 취지에도 맞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낸 후 어쩌다가 같은 테이블에 소설가 넷이 앉았다가 지나가던 남 작가가 합류했다. 두 사람 사이에 지인이 한두 명 있을 수는 있었지만 모두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등단 시기부터 출간한 책의 권수, 작품 성향 같은 직업적인 면에서부터 사는 곳, 출신 학교, 전공 같은 내력까지 겹치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소설에 진심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순식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친밀해졌다. 그렇게 다섯이 일주일 내내 어울렸다. 그렇게 여행의 절반이 흐른 후에야 여 작가가 한두 번 합석했다.
며칠 후 저 두 사람 좀 수상하죠?라고 말을 꺼낸 것은 이 작가였다. 그리고 많이 수상하죠,라고 웃으며 답한 것은 현정이었다. 그런 현정을 바라보며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해도 돼요?라고 한 것은 정 작가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저 두 분한테 아무 관심도 없어요. 그나마 우리가 제일 애정이 있을걸요,라고 말한 건 서 작가였다.
우리가 어디 가서 말을 하며 저 사람들이 뭘 하든 누가 궁금하겠어요?
말해도 아무도 모를걸요.
그렇긴 해.
크루즈의 여정이 열흘쯤 남았을 시점이었다. 긴 여행과 작업으로 지칠 무렵 여 작가와 남 작가의 예상 밖의 행동은 넷에게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