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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영 Oct 30. 2024

나르시시스트의 연애 6

연애 소설

남 작가의 예상 밖의 행동은 넷에게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냥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 둘이 사랑에 빠지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봐요. 

소설이니까 성별이랑 뭐 그런 설정은 바꿀 수도 있고…

좋네요. 상상해 봅시다.


그날 넷이 시작한 대화는 소설의 필수 요소인 인간에 관한 탐구와 소설의 아이디어에 관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연애소설 쓰고 싶다는 거 플러팅이었던 거예요?

그러게요.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는 여 작가의 말에, 연애를 해야 연애소설을 쓰죠,라고 답한 건 남 작가였다. 거기에 그건 다 핑계고 살인을 해 봐야 범죄 소설을 쓰냐고 말한 건 현정이었다. 


그때도 이럴 마음이었을까요?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모를 마음이었다. 어쩌면 당사자도 그 당시에는 몰랐을 마음. 말하는 순간 확인되는 어떤 마음들. 


누군가 실시간으로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은 다양한 각도에서 비춘 CCTV처럼 넷의 시각을 합치자 엄청난 재밋거리가 되었다. 실상은 그저 그런 연애의 시작에 불과했을 사건은 소설가 넷이 저마다 이야기를 보태자 층층이 쌓여 퍼즐이자 매직아이가 됐다. 두 사람만으로는 절대 완성되지 않을 퍼즐. 멀리서만 보이는, 알고 보면 웃기는 퍼즐. 


몰래 서로의 방을 드나들면서 일부러 테이블 옆자리에는 앉지 않고, 같이 있는 자리는 피하면서 둘이서만 술을 마시고, 정착지에서 둘이 사라지는, 같은 자리에서 카톡이 오가는 소리가 들리다가 시간차를 두고 사라지기도 하고… 누가 봐도 이 사람들 무슨 사이인지 알겠다 싶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아서, 알은척하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귀찮아서 다들 모른 척하고 있는데 둘이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비밀 연애에 우월감을 느끼는 듯했다.


좀 더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모르는 척 연기하기도 힘드네요. 

그런데 진짜 너무 빠르지 않았어요? 

이 타임라인이 믿기지가 않네요.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빠진 거잖아요. 이게 가능해요? 불륜인데. 


아 참, 그러고 보니 불륜이었네요.

작가님,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난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했지. 흠…

아무튼 우리 중 두 사람이 가장 윤리적인 척 모범적인 척했잖아요. 


소설이라면 너무 개연성이 떨어져요. 

둘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선남선녀라고 해도 저럴 수는 없을 거 같은데요.

결핍에서 찾아야죠. 서로를 연민하게 되는 뭐 그런 요소를 넣어야죠. 

솔직히 이 정도면 여자는 이 남자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누구와라도 그랬을 것 같고, 남자는 이 여자 아니어도 누구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계속 그랬을 거 같은데요. 


그 공교로움도 재밌네요. 한번 써 보세요. 그것도 나름 운명이 아닐까 싶은데…

운명이라니. 진짜 웃겨요. 

그런데 둘은 진짜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사랑에 빠질 때는 누구나 그런 착각 하잖아요. 저 둘의 사랑은 불륜이라 결혼이라는 현실이 끼어들 틈이 없잖아요. 


현실은 하나만 걸려라, 하고 수없이 시도한 끝에 마침내 누군가가 넘어간 건데, 그 누군가는 자기가 단번에 걸려들었다는 걸 모르잖아요. 이걸 알려 줬으면 저렇게까지 진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까요?

저 사람들이 작가님보다 나이 많은 어른이에요. 

조언을 원하지도 않는데 우리가 무슨 조언을 어떻게 해요.

하긴 그렇죠.  


어쩌면 그 당시에는 넷이 둘보다 둘의 관계를 더 잘 알았을지도 모른다. 둘이 엮이던 시점의 전후 관계. 둘 중 하나가 없는 자리에서 하나가 한 말과 행동, 그리고 넷 각자가 둘과 개별적으로 나눈 말과 행동, 그리고 넷이 서로 다른 자리에서 보고 들은 무언가. 둘은 모르고 넷만 알아챈 사실 아닌 진실들.


그때까지만 해도 넷은 둘에게 반감은 없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일이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일이 된 것은 그들이 연애를 하면서 타인에게 입힌 가해와 작가들에게 입힌 피해 때문이었다. 두 사람 때문에 결국 크루즈 행사가 아예 없어지게 되었는데 그 내막도 넷이 후에 짜 맞춘 퍼즐에 의하면 그랬다. 한 달을 색다른 풍경과 환경 속에서 영감을 받으면서 충전하던 시간, 그리고 작가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던 시간. 그런 미래의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또 사라진 미래의 어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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