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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Jun 08. 2020

(10) 언니의 결혼식



[12월 언니의 결혼식]


12월의 언니는 결혼을 무사히 끝냈다.

결혼식 당일날 아침에 일어나니 모두가 무표정도 아니고 웃고 있는 표정도 아닌 뭔가 시원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랑 언니는 그래도 웃고 있었고, 아빠는 늘 그렇듯 비비씨 다큐를 보고 있었다. 비비씨 다큐는 바쁘게 사는 동물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보기 딱 좋다. 이번엔 뉴질랜드에 나오는 키위새 이야기를 보고 계셨었다. 


아빠랑 나는 웨딩샵에서 따로 미용을 해준다 하지 않는다 하여, 별도로 예약한 샵에 갔다. 


히터를 틀어도 찬 기운이 남아있는 차 안에서 아빠와 나의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정적이 답답해 괜히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선 오늘은 전국적으로 영하권을 웃돌며 초 미세먼지 나쁨이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나왔다. 


광고 음악이 몇 번 나오더니 또다시 약간의 정적


내가 사는 동네는 공업단지이다. 그런지 공장이 참 많다.

바닷길을 달리는 동안, 아빠 운전석 너머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장들이 보였다.

공장들은 몇십 년째 변함없이 무섭고 큰 긴 기둥을 가지고 있었고, 그 크고 긴 기둥 위에는 하얀 공해들이 끊임없이 빠져나왔다.


내비게이션의 음성이 들렸다. 내비게이션은 우리 부녀가 길을 잃을까 바쁘고 부지런하게 길을 안내했다. 

샵에 도착할수록 '아 오늘 언니 결혼식 날이구나' 하면서 실감이 됐다. 괜히 긴장이 되어 아빠한테 말을 걸었다.


“아빠 저기 위에 보이는 공장 위에 뭉게뭉게 하듯이 연기 나오잖아. 저 공해들”

“응”

“나는 어릴 때 저게 구름 만드는 공장인 줄 알았다? 구름들이 저기서 만들어지는 줄 알았어”


또다시 정적


“푸후- 푸하하. 재밌다."


가만히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내뱉은 아빠의 말


신이 난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지 재밌지. 진짜 순수했다니까. 나는 이 세상 구름들이 다 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줄 알았어"

"크흐 재밌다 재미있어 정말"



[2019년의 마지막]


그렇게 그날은 다들 좋은 기분으로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축하받는 언니, 형부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나눴다. 나는 그 사이에 나의 친구이자 하나밖에 없는 형제였던 언니가 더 이상 우리 집에 없다는 게 슬퍼 울었다. 부모의 입장에서 결혼식을 처음 해보는 아빠는 샹들리에 선에 코르사주가 걸리는 바람에 모두가 웃었다. 엄마는 모든 사람들이 축하해주는 게 너무 행복하다며 벅차 하셨다. 모두가 유쾌한 결혼식이었다. 형부는'이적-다행이다'를 언니의 이름 넣어 가사를 개사해 불렀다.


약 30분이 넘는 결혼식이 끝나고, 뷔페 만찬을 즐긴 뒤, 언니를 포함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집으로 도착했다. 난 언니 머리에 박혀있는 수십 개의 실삔들을 뽑아주고 난 뒤 잠이 들었다.


언니는 신혼여행을 가기 전, 내가 호주 갈 때 쓰려고 사놓은 큰 캐리어 하나를 빌려갔다. 


그렇게 2019년의 모든 게 끝나갔다.


1월이 되면 본가인 우리 집엔 언니도 없고, 나도 없을 것이다. 

언니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아오면, 나도 이제 짐을 본격적으로 싸야 했다.


12월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래도 나름 10대일 때는 눈이 오는 날이면 친구들이랑 집 전화로 만날 장소를 정해 눈을 맞으며 놀았고, 연말이면 가요대제전이나, 연예대상을 보며 친구들이랑 문자로 실시간 대화를 주고받곤 했다. 그렇게 12월의 막바지가 지나 카운트다운을 세고, 제야의 종이 울리게 티브이로 나오면 준비해뒀던 새해 문자로 새해 복 많이 받고, 올해도 잘 부탁한다는 식의 내용을 보내곤 했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생기고 나서 그렇게 보낼 일도, 그런 감흥도 모두 사라졌다. 생일과 새해 그 어떤 것도 감흥이 없고 설레지도 않고 기대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 올해 2019년은 정말 마지막을 준비하는 기분에 아쉽고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설렜다.

이제 서른이 되었고, 20대 때 액땜 다 했으니 서른에는 행복하길 바란다며 빌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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