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재무 담당자로 먹고 삽니다 (2)
일단 시스템이 갖춰지면 윗사람들은 실무자의 업무 부담이 크게 줄어들고 업무 능률도 크게 오를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스템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A라는 부분을 고려해서 세팅해놓으면 그것때문에 B라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예외적인 변수는 언제나 있기 마련. 그냥 엑셀로 처리하면 뚝딱 끝낼 일도 오히려 시스템에 맞추려다 보니 더 복잡해지고 꼬이는 일도 종종 있다.
예전에 그런 일이, 복잡하게 꼬인 일이 생긴 적 있다. 시스템을 통해서 회계기준에 맞는 결과값을 만들어야 하지만 시스템 설계상 제대로 산출이 안되는. 그래서 시스템 담당자와 회계사 등등 업무 유관자들과 수없이 협의해서 완벽하진 않지만 어쨌든 방법을 찾아냈다. 그렇게 꾸역꾸역 일이 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도 해보지 않은 방법으로 해보려고 바둥거렸다. 내가 계속 야근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회계감사 이슈에 대해 회의하던 중에 이 토픽이 잠깐 나왔다. 난 "이런 문제가 있지만 이렇게저렇게 해결책을 모색하고 노력중이다"라고 설명드렸다. 그때 리더의 반응은 이 말이었다. "진작 정리했어야지, 왜 지금에 와서 그러고 있냐고." 그러게, 왜 진작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수백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싶었지만 감사인들도 있는 자리에서 그런식의 반응은 옳지 않다는것을 10년차 직장인의 경험이 알려주기에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리더에게 있어 (부정한 방법만 아니라면) 과정보다 중요한것은 결과이고 성과이다. 나도 잘 이해한다. 회사가 원하는 결과를 빨리 만들어내도록 팔로워를 잘 푸쉬하는것은 리더의 책임이고 자질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팔로워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도 리더의 자질 중의 하나라 본다.
리더가 그 말을 뱉는 순간 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안되는 시스템 붙잡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바둥거린 내 시간과 노력들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슬펐고, 화가 났다.
그날 자정이 넘어 퇴근하고는 스킵했던 저녁식사 대신 먹으려고 냉동만두를 데워 먹었다. 전자레인지 소리에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워버렸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속상했던 일들을 대략 나누었다. 이럴때 아내는 내 말을 묵묵히 들어주고 위로를 건네주려 애쓴다. 고마운 사람이다. 다음날 아침엔 힘내라며 소고기를 구워서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어준 아내. 고마운 사람이다.
그래, 굳이 회사에서 위로를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다. 회사는 원래 스트레스를 주는 곳이고 그 대가로 돈을 주는 곳이니까. 회사에서 위로를 찾고 스트레스를 풀려는 것은 무의미할 뿐.
위로라는 것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