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마음>에 대하여
정중부를 중심으로 무신들이 난을 일으킨 사건인 무신정변은, 고려시대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기준이 될 만큼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평화로운 시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특권층이 된 문벌귀족 문신들은 모든 지위와 권력을 독차지했고, 무신들은 그들의 정권을 보호하는 호위병 지위로 격하되고 말았다. 무신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로 인해 점차 커져가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임금이던 의종은 보현원으로 놀러 가려던 길에 무신들의 노고를 치하한다며 오병수박(五兵手搏) 무예 경기를 열었다. 무신들끼리 무예 시합을 즐기며 상을 나눠주겠다는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많던 대장군 이소응이 기력을 다해 경기에서 빠져나오자, 한뢰라는 젊은 문신이 그의 따귀를 때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본 임금과 문신들은 손뼉 치며 비웃었고, 화가 난 정중부가 한뢰를 꾸짖지만 오히려 임금은 뭐 그만한 일로 화를 내냐고 면박을 준다. 이 사건으로 정중부와 무신들의 분노는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섰고, 그날 밤 무신정변이 일어난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오병수박 경기가 사실은 무신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행사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무신들의 노고를 위로하고자 했던 의종의 진심이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의종에게는 그들의 고충을 제대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없었고, 무엇보다 무신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다. 무신들의 불만이 커져만 가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저 외면할 뿐인 일회성 이벤트는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었다.
존중은 ‘尊’(높을 존)과 ‘重’(무거울 중)으로 구성된 단어다. 尊은 ‘酋’(묵은술 추)와 ‘寸’(마디 촌)이 결합한 모습인데, 酋은 좋은 향이 퍼져나가는 술의 모습을 형상화한 한자이고 寸은 손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즉, 좋은 술을 두 손으로 공손히 따르는 모습을 표현한다. 흔히 술자리에서 윗사람에게 술을 따를 때 모습을 떠올려 보면 되겠다. 重은 사람이 등에 짐을 지고 있는 모습에서 무겁다는 뜻을 가진다. 그 등에 진 짐은 중요한 물건이기에 소중하다는 뜻도 함께 가진다.
오랜 시간 동안 존중받지 못했던 무신들의 불만이 마침내 무신정변으로 이어지고 말았던 것처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서로 존중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따르겠다는 마음가짐이며, 동시에 그를 소중히 여기고 가벼이 여기지 않는 태도이다. 무신정변의 교훈을 곱씹어 보며 생각해 보자. 나는 누구에게든 거리낌 없이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따라주며 함께 술을 즐기는 사람인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공손히 따라주는 술을 마셔야만 술맛이 나는 사람인가.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인가, 늘 존중받기만을 바라는 오만한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