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마음>에 대하여
마라톤 영웅 이봉주 선수의 강연을 소개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근육긴장이상증(중추신경계 이상으로 근육이 경직돼 몸이 뒤틀리는 희소질환)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그는, 수년간의 수술과 재활 과정을 통해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혀 겪어보지도 않은 불행을 감당해야 했던 이봉주 선수였지만, 사실 그의 인생은 고난과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그는 평발에 짝발이라는 육상선수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선천적으로 안고 태어났다. 그런 그가 육상을 하겠다고 선택했으니 순탄한 길을 걸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시합 때마다 발톱이 빠지고 피 물집이 잡혔고, 특수제작한 신발을 신고 달려야만 했다. 이런 약점을 극복해 내기 위해 그가 실천한 방법은 3가지였다.
첫째, 스스로 루틴한 규칙을 만들어 반드시 지켰다. 가령 매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을 했다고 한다. 꾸준함의 힘을 기른 것이다.
둘째, 마라톤에서처럼 인생의 페이스메이커를 만들었다. 그 세 사람이 롤모델이었던 황영조 선수, 경쟁자였던 김이용 선수, 스승이었던 오인환 감독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봉주 선수가 계속해서 달릴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했다.
셋째, 데드포인트에서 포기하지 않고 즐겼다. 마라톤에서 체력이 고갈되어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을 데드포인트라고 하는데, 그 순간이 왔을 때 이봉주 선수는 '지금부터 시작이구나. 이 고비만 넘어서면 완주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달렸다고 한다.
특히 데드포인트에서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그의 조언이 마음깊이 와닿는다. 사람의 인생은 온통 고난, 걱정, 불안으로 점철되어 있고, 때때로 너무 힘든 나머지 데드포인트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 형태만 달리 할 뿐 누구나 자신만의 데드포인트에 직면한다. 그 순간 너무 힘들어서 완주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에라이 모르겠다'하며 그냥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부터 시작이구나. 이 고비만 넘어서면 완주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견디며 달려 나가는 사람도 있다. 바로 인내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다.
인내(忍耐)는 '忍'(참을 인)과 '耐'(참을 수)로 만들어진 한자어인데, 참고 참는다는 뜻을 가진다. 忍은 '心'(마음 심) 위에 '刃'(칼날 인)이 드리워진 모양이다. 심장 앞에 칼날을 겨누고 있으면 누구나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또는 심장이 칼날에 베일듯한 극도의 아픔을 견딘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겠다. 耐은 '而'(말 이을 이) 옆에 '寸'(마디 촌)이 더해진 모양인데, 而는 사람의 턱수염을 형상화한 것이고, 寸은 사람의 손을 그린 것이다. 즉, 턱수염을 손으로 뽑고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턱수염을 뽑으면 당연히 매우 아프다. 그런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을 형상화한 한자가 耐다.
인생에 고통도 없고 데드포인트도 없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늘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그렇기에 고통을 피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때로 고통을 있는 그대로 감내하고 견뎌낼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마라톤을 뛰면서 데드포인트의 순간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데드포인트에 들어서서 칼날에 베일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하고, 수염이 마구 뽑히는 듯한 아픔이 닥쳐올 때 이봉주 선수처럼 이렇게 생각해 보자.
'지금부터 시작이구나. 이 고비만 넘어서면 완주하겠구나.'
그렇게 마침내 완주해 내고서 쏟아지는 잠깐의 희열을 맛본 뒤, 또다시 담담히 다음 마라톤 경기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곧 우리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