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기억(記憶)하려는 마음
한자, <마음>에 대하여
10년 전쯤 인도 파견 근무를 했던 시절 함께 일했던 현지 직원동료 한 명이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해왔다. 한국에 출장을 가게 되었으니 얼굴 한번 보자면서. 오랜만에 만난 그도, 나도, 함께 일하던 그때보다 조금은 늙어 있었지만, 함께 한 기억만큼은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기억 일부를 함께 공유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예전에 다녔던 회사 팀원으로부터 결혼한다며 연락이 왔다. 나는 이미 그 회사를 떠난 사람이고, 그냥 모바일 청첩장으로 충분할 텐데, 만나서 저녁 한 끼 사고 싶다는 그 말이 참 예뻐 보인다. 기꺼이 약속 시간을 잡는다. 그 역시 내 기억의 일부를 함께 공유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기억(記憶)은 '記'(기록할 기)와 '憶'(생각할 억)이 더해져 만들어진 단어다. 記를 보면 '言'(말씀 언) 옆에 '己'(자기 기)가 놓였다. 인생을 살아오며 내가 해온 말이 곧 기록이라는 뜻이다. 憶은 '忄'(마음 심)과 '意'(뜻 의)이 결합된 한자다. 내 마음속에 의미 있는 순간으로 남은 것, 그것이 憶이다. 이렇게 보면 기억이란 내 인생을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말과 행동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의미 있는 것들만 추려져 남은 것이 바로 기억이다.
그렇기에 내게 남아있는 그 모든 기억의 총합이 곧 내 인생이다. 살다 보면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갖게 되기 마련이다. 내게 좋은 기억이 더 많다면 난 좋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고, 내게 안 좋은 기억이 더 많다면 안 좋은 삶을 살아왔다는 반증이겠다. 그렇지만 기억이 있는 모습 그대로만 늘 투영하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더라도 나름의 의미를 찾고 소중했던 시간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시간은 좋은 기억이 된다. 물질적으로 부족할 것 없는 환경이었음에도 나에게 무의미하고 공허한 시간으로 느껴졌다면 오히려 불편한 기억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기억을 어떻게 남기기로 결심했느냐에 따라, 내 인생은 좋은 인생도, 나쁜 인생도 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기억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 남지 않는다. 내 인생을 살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가진 기억들을 공유한다. 누군가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면 그 즐거운 기억은 내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함께 한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때, 진정으로 좋은 기억이 된다. 그 인도 직원과 함께 일했던 기억처럼, 결혼 소식을 알려온 그 팀원과 즐겁게 직장생활을 했던 기억처럼.
좋은 인생에는 좋은 사람이 남고 좋은 기억이 남는다. 이 말은 곧 좋은 사람을 가까이 둘 때 좋은 기억이 남고, 좋은 인생이 된다는 의미다.
내게 좋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건, 그러한 기억을 만들어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을 만들어줬을까? 좋은 기억을 더 많이 만들었을까, 안 좋은 기억을 더 많이 만들었을까? 인생의 절반쯤 살아온 이때, 잠잠히 내 지난 삶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