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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Sep 16. 2024

2-9. 기만(欺瞞)하는 마음

한자, <마음>에 대하여

명절이 되면 많은 회사들이 직원들에게 상여금이나 선물을 지급하면서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예전에야 회사에서 얼마나 상여금을 받았든, 어떤 선물을 받았든 지인이 말해주는 것이 아닌 이상 알기 어려웠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이 되고 보니 그런 정보가 쉽게 공유된다. 중소기업 직장인들이 추석 선물 인증이라며 올라온 사진들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어떤 회사 직원은 백화점 상품권 3,000원이 담긴 봉투를 받았다며 "사람 기만하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다른 직원은 명절 끝나고 퇴사할 거라 하고, 나도 퇴사할 거다."라는 분노에 찬 글을 올렸다. 선물세트를 소분해서 작은 참기름 병과 스팸 1개를 청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줬다는 회사도 있고, 배 한 박스가 아니라 그 박스에 담긴 배 하나씩 가져가라고 했다는 회사도 있다. 사장님이 시골집에서 따온 밤 한 봉지씩 명절 선물이라며 나눠준 회사도 있고, 컵라면 1개와 미니 초코바 1개 위에다 '추석 선물'이란 메모지를 붙여서 나눠준 회사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회사가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성의 없는 선물이 화제가 이유는 이런 식으로 선물 주는 회사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이런 대접을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3,000원 치 백화점 상품권을 받은 직원이 했던 말처럼 기만당한다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남을 속여 넘긴다는 뜻을 가진 '기만(期滿)'이라는 단어는 '欺'(속일 기)와 '瞞'(속일 만)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속인다는 뜻뿐만 아니라, 업신여긴다는 뜻도 함께 가진 한자 欺는 '其'(그 기)와 '欠'(하품 흠)이 결합되었다. '그것'이라는 뜻을 가진 其는 원래 곡식에 섞여있는 쭉정이와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인 키의 모습에서 왔다. 欠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니, 입을 열고 이것저것 떠벌리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되겠다. 이 한자를 알고 나면 이런 모습이 연상된다. 쭉정이나 돌멩이만 들어있는 키를 열심히 흔들어대면서 탐스런 알곡이 가득 담겨 있다고 입으로 떠들어대는 모습. 한마디로 사기 치는 모습이다.


瞞은 '目'(눈 목)과 '㒼'(평평할 만)이 합해진 한자다. 이 한자가 어쩌다 속이다는 뜻을 갖게 되었는지 명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이 한자의 또 다른 뜻으로 '눈이 게슴츠레하다'는 뜻도 있는 걸로 봐서는 눈을 평평하게, 즉 게슴츠레하게 뜨고 남을 속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난 이렇게 해석하고자 한다. 내 눈(目) 앞의 세상을 모두 평평하고 만만하게 보는 것(㒼)이 속이다(瞞)의 뜻을 가진 한자가 된 것이라고.


직원들을 귀하게 여기고 그들의 노고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가진 회사라면, 결코 백화점 상품권 3,000원이나 청테이프로 칭칭 감은 선물을 주지 않을 것이다.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런 상황을 솔직히 공유하고 직원들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옳다. 이런 안 주니만 못한 선물로 생색만 내려다보니 오히려 받는 사람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고 기만당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선물은 직원들을 조심스럽게 올라야 할 산이 아니라, 낮고 만만한 평지로 내려다본다는 증거가 될 뿐이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한 태도의 기본은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서 온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그가 어떤 사람이든 높은 산으로 여기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면 그는 정말로 우직한 산이 되어 내 곁에 남는다. 만만한 평지로 보고 함부로 밟고 지나가듯 대한다면 빠르게 지나친 평지처럼 내 곁에 남지 않을 것이다. 직원에게 3,000원 치 상품권을 준 사장님은 직원들을 고마운 동료가 아니라, 그저 인건비로 바라봤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퇴사해야겠다고 울분을 토한 그 직장인의 말처럼 직원들이 퇴사한들 새로 사람을 뽑아서 채우면 그만일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평지를 빠르게 지나치듯 사람들을 쓴다면, 그가 하는 사업에 힘이 되어줄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우직한 산 같은 사람들이 그 곁에 얼마나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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