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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욱 Dec 03. 2024

2-21. 화(火)나는 마음

한자, <마음>에 대하여

살면서 가장 많이 분출되는 감정을 다섯 손가락 꼽으라 하면, 아마도 화나는 감정이 반드시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딱히 좋은 감정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인간 본성과 절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감정. 


화는 왜 나는 것일까? 화가 나는 상황들을 잘 생각해 보면,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딪칠 때 발생한다. 누구 하나 터치하는 사람 없는 조용한 카페에 홀로 앉아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고요한 순간에는 절대 화가 나지 않는다.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직장 동료 때문에, 갑자기 차선 끼어들기하는 어떤 난폭운전자 때문에, 약속 시간을 한참 넘겨 나타나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친구 때문에 화가 난다. 물론 나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나의 못난 행동 때문에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화나는 상황은 타인으로부터 초래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화가 나는 것은 의도했던 일이나 상황이 내 마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 화가 난다. 나 스스로의 부족함 때문에 일이 되지 않아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나는 순간도 있지만, 그 원인이 남에게 있다고 생각될 때 화는 더 격렬하게 일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면이 있다. 그것이 심한 사람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 돌린다. 나는 아무 문제없는데 이 모든 원인이 남 탓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화가 더 격렬하게 끓어오르고, 심지어 이 세상 자체를 증오하기에 이른다. 


사람이 살다 보면 화나는 순간이 늘 있기 마련이지만, 그 감정에 너무 격렬히 휩싸이게 되면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이 '화'라는 단어 자체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이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화는 한자 '火'(불 화)에서 왔다. 그렇다. 화를 낸다는 것은, 곧 내 마음속에 불이 나는 것과 같다. 불이 나면 주위가 모두 불타 버린다. 거센 불길은 내 주변을 모조리 불태워버릴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 자신까지 태워버릴 수도 있다. 이처럼 위험한 불을, 이 화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불 끄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그 힌트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과학 상식을 떠올려보자. 불의 연소가 지속되는 조건은 3가지가 있다. 연료의 계속되는 공급, 연소 반응에 필요한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 산소의 공급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불이 났을 때 물을 뿌리는 것은 불꽃의 열을 빼앗아 에너지 공급을 차단시킴과 동시에 물이 기화해 발생한 수증기가 산소 공급을 차단시키는 효과 때문이다. 화재지점 주위를 선제적으로 태워서 불이 번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연료의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불을 끄려면 연료, 에너지, 산소 이 세 가지 중 하나는 반드시 차단이 필요하다.


불 끄는 방법을 통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유추해 보자. 먼저 연료의 공급을 차단해야 한다. 나를 화나게 만드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회사가 나를 힘들게 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켜 버리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가장 극단적인 마지막 처방이 되어야 한다. 힘들 때마다 회사를 그만두고, 화가 날 때마다 인간관계를 모조리 단절해 버리면 결국 내 곁에 누가 남고, 무엇이 남겠는가. 충동적으로 퇴사를 결심하기보다 일단 휴가를 내서 숨 고르기를 하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흉금을 터놓고 서로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하며 관계를 풀어보는 것도 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다. 계속 화가 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부정적인 생각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왜 나에게 이런 억울한 일이 생기는 거지? 왜 나한테 함부로 대하는 것 같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은 화나는 감정의 훌륭한 에너지원이다. 아무리 내 잘못이 아닌 것 같고 내 마음에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 해도, 때로는 '그러려니'하고 참고 넘겨야 할 때도 있다. 그 순간에는 정말 부당한 일처럼 느껴졌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화낼만한 일이었는지 한번 더 생각해 보고, 그게 아니라면 참고 넘기는 순간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산소를 차단하는 것이다. 화나는 순간에 있어 산소란, 미운 감정이다. 똑같은 잘못에 대해서도 내가 아끼는 사람보다 싫은 사람이 그랬을 때 더 화가 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옛말에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누군가의 분명한 잘못으로 인해 화가 나는 순간, 그 잘못에 대해 화를 내고 분명히 지적해서 바로 잡아주되,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미워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일단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도 화날 수밖에 없고 늘 내 마음속에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쉽지 않지만, 때로 용서할 줄 아는 관대한 마음이 필요하다. 용서는 산소를 소멸시키는 매우 강력한 도구다.


내 마음의 불을 끄자. 삽시간에 일어난 불이 나 자신을 전부 태워 버리기 전에, 내 마음속 화를 지속시키고 있는 연료 공급을 차단하고,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고, 산소 공급을 차단하자.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인생을 살면서 화를 전혀 내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화는 꼭 내야만 할 때만 내도록 하자.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타인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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