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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비통(悲痛)한 마음

한자, <마음>에 대하여

by 신동욱

며칠 전 아들이 하루종일 울다가 잠든 일이 있었다. 작년 여름에 새끼 도마뱀 한 마리를 사서 키워왔는데, 아들이 마치 강아지 키우듯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도마뱀을 데리고 놀다가 그만 꼬리를 세게 잡았던 모양이다. 그 바람에 도마뱀이 본능적으로 스스로 꼬리를 잘라버렸고, 그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아들이 큰 충격에 빠지고 만 것이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꼬리가 잘린 것이 자기 잘못이라며 은별이(도마뱀 이름)한테 너무 미안하다며 아들은 하루종일 계속 울었다고 한다.


내가 늦은 시간 퇴근을 했을 때, 아들은 잠들었다가 다시 깬 상태였다. 그리고 또 울먹이면서 '너무 슬퍼서 마음이 아파'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아들에게 꼬리가 있든 없든 은별이는 여전히 똑같은 은별이고, 이번 일로 네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그만큼 은별이를 더 아껴주고 보살펴 주라고 다독였다. 어쨌든 이번 일이 그간 아들의 10여 년 인생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나 보다. 지금껏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고 아들이 고백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너무 슬퍼서 마음이 아픈 상태를 '비통(悲痛)'이라 한다. 여기서 '비'는 '悲'(슬플 비)라는 한자에서 왔는데, '非'(아닐 비)와 '心'(마음 심)이 합해진 한자다. 즉, 아닐 거라 여기는 마음, 너무 놀랍고 슬픈 현실 앞에서 아닐 거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悲가 뜻하는 의미다. 아들은 꼬리가 잘려나간 은별이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며 울었다. 도마뱀 꼬리가 잘린 광경이 너무 놀랍고 충격적이어서 쉽사리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들에게는 큰 슬픔으로 다가왔고 급기야 마음이 너무 아픈 상태에 이르렀다. '비통함'을 느낀 것이다. 비통함이란 이런 마음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낙담되고 슬픈 마음, 그것이 비통함이다.


비통한 마음이 들 때, 우는 것을 탓할 수 없다. 오히려 울어야 한다. 울면서 비통하고 슬픈 마음을 계속해서 게워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언제까지나 슬픔 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실컷 울고 나면, 이제 울음을 그치고 다시 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내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아닐 거라 여기는 마음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부정'이라 한다면, 그 반대말인 '긍정'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 잘 될 거야' 그런 말을 주문처럼 계속 되뇌는 행동 따위가 긍정이 아니다. 진짜 긍정이란, 내게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그것이다. 슬픔을 이겨내고, 다시 내 삶을 제대로 살아갈 힘은 바로 이 긍정에서 나온다.


아들이 슬픔에서 빠져나와, 꼬리가 있든 없든 은별이를 예전처럼 사랑해 주고 아껴주기를 바란다. 다행히 자기 용돈으로 은별이에게 더 좋은 사육장을 사주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서, 예전처럼 정성껏 밥도 주고 물도 주는 아들의 행동에서, 비통한 마음을 서서히 이겨내는 아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해 기쁘고 자랑스럽다. 때로 좋은 일도 겪고, 때로 슬픈 일도 겪으면서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성장하는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부모로서 늘 조마조마하면서도 동시에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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