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서울대병원은 가장 크고 유명한 대학병원이었다.
서울대병원에 처음 진료를 받으러 온 날이었다.
나와 엄마는 서류를 한가득 들고 병원 카드를 만들기 위해 창구를 옮겨 다니며 병원 안을 정신없이 오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번호표를 쥐고 서 있다가, 다시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날 병원은 유난히 넓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계속 기다리며 움직였다.
나는 서울대병원 소아 신장내과 최 O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다.
진료실 앞에는 대기 환자가 50명이 넘었다.
9시 반 진료였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불리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자꾸 하품이 나왔다.
이름이 불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인상이 좋은 의사가 앉아 있었다.
오래 기다렸지만, 신뢰감이 느껴지는 인상에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처음 진료를 보시는 거네요.”
“네. 광주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못 고친다고 해서 여기로 왔어요.”
“광주에서도 들었겠지만, 신장은 한 번 망가지면 회복이 쉽지 않습니다. 지금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엄마는 서울에서는 고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힘들게 올라왔는데, 비슷한 말을 듣고 실망한 눈치였다.
최 교수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의뢰서를 보니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예요. 더 나빠지면 혈액투석*을 해야 합니다.”
“혈액투석이요? 그게 뭐예요?”
“3층 소아신실*이 있어요. 거기 가서 한 번 보고, 궁금한 게 있으면 간호사에게 물어보세요.”
엄마에게 혈액투석이라는 말은 낯설었다.
“정확한 상태를 알기 위해 조직검사를 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음에 시간 될 때 입원해서 진행하지요.”
첫 진료는 석 달 뒤 예약을 잡고 짧게 끝이 났다.
어린 나는 의사와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을 바꿀 말들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오래 기다린 시간이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3층 소아신실로 갔다.
좁은 공간에 침대와 기계들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내 또래의 아이들이 누워 투석을 받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이 투석하는 걸 한 번 보라고 해서요.”
“투석이 뭔지 모르시죠?”
“네.”
“혈액투석은 일주일에 세 번, 피를 빼서 기계로 노폐물과 수분을 거르는 거예요.”
“일주일에 세 번이 나요?”
“네. 투석은 한 번 시작하면 평생 해야 해요.”
“평생이요? 치료는 안 되는 거예요?”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이들이 피를 빼 기계에 연결된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었는데, 저걸 내 아들이 평생 해야 한다는 말은 더 버거웠다.
엄마는 아들을 절대 투석시키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서둘러 투석실을 나왔다.
진료를 마친 뒤 검사를 하고 병원 약국에서 석 달 치 약을 받았다.
아침 여덟 시에 도착해 병원을 나설 때는 정오가 훌쩍 넘었다.
진료와 검사, 약국까지 한 시간씩 넘게 기다리다 보니 몸이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혈액투석(Hemodialysis): 만성신부전 환자가 더 이상 신장기능을 할 수 없을 때 인공신장기를 이용하여 혈액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소아신실: 서울대 어린이병원 투석실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