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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영 Jan 06. 2019

[17도] 어느 날 누군가와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술꾼

 20대의 엄마랑 술을 먹어보고 싶다. 지금 내 나이 말고, 스물두셋의 뽀얀 엄마랑. 반에서 항상 제일 예뻤고, 풍족했던 집에서 용돈을 받아 클래식 LP판과 계간지를 사서 듣고 읽던 소녀. 그때 그 시절의 그 소녀에게 지금 내 나이 그대로 다가가서, 80년대의 오래된 어느 바에 들어가 비싼 술 한잔을 사주고 싶다. 한참 언니 된 태도로 많은 걸 캐물어야지. 어떤 삶을 꿈꾸는지, 하고 싶은 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너는 어떤 사람인지. 어릴 적의 엄마는 새침하고 도도했다고 했으니까, 술 없이는 질문에 대한 답들을 모두 다 듣기 어려울 게다. 술잔이 비워지면 또 조금 따르고, 또 조금 따라주고를 반복하면서 하나씩 묻고 싶다. 어쩌면 지금의 엄마도 기억하지 못할 그 때의 엄마를 눈 속에 가득 담을 거다.


 그리고 취기가 조금 오를 때쯤엔, 하얗고 어린 엄마의 두 손을 꼭 잡고 이야기해야지. 결혼하지 말라고, 스물넷 대학생 티도 못 벗은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금방 아이를 셋씩이나 낳고 집이라는 감옥 안에 갇혀버리는 그런 선택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방금 네가 말한 그 모든 것들, 넌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다 이뤄진 다음에 그때 결정하라고 해야지. 정말로 많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에도 삶은 짧다고.


 세상의 딸들에게 ‘20대의 엄마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아빠랑 결혼하지 말라’고, 혹은 ‘날 낳지 말라’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참 속이 시린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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