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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유진 Feb 16. 2019

대한민국을 강타한 삭센다 열풍

비만치료 자가 주사제의 명과 암

    나의 친한 친구가 어느 날 만났더니 갑자기 없던 턱선이 생겨 있고, 식사 자리에 나와 평소에 먹던 양의 반도 먹지 않고 배가 부른다 한다. 이빨을 꽉 깨물고 캐물으니 최근부터 자주 다니던 피부과에서 처방해준 주사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 이름이 뭔가 예사롭지 않다. '삭센다', 일단 이름부터 뭔가 끌린다. 살을 사악~ 그리고 아주 세게! 빼 줄 것만 같다. 바로 검색해보니, 벌써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하며, 확보한 병원들에서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처방조차 불가능하다는 광고가 연이어 내 눈에 들어온다. 지난 시간 다이어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삽질과 아픔을 겪어왔는지... 매일 밤 배고픔과의 전쟁 끝에 패배하고 치킨 한 마리를 통째로 뱃속에 넣은 뒤 얼마나 나 자신이 경멸스럽게 느껴졌었는지 그러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온다. 뭘 기다려? 바로 병원으로 출발.

다이어트. 이름만 들어도 힘든 그 네 글자 단어. (출처 : tvN)


    2018년을 통틀어 전국의 피부, 비만, 체형 클리닉에서 가장 핫했던 키워드는 단연코 '삭센다'였다. 3월에 출시된  펜 타입으로 생긴 자가 주사제 형태의 이 신약은 출시되자마자 '살 빼는 용한 주사를 맞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다더라'라는 입소문과 더불어 병원들과 제조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빛을 발하면서 미용, 체형 관련 개원가를 폭풍처럼 덮치며 너도 나도 찾는 핫 아이템으로 등극해 버렸다. 생산이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 품절 현상이 매 달 반복되는 기현상으로 전국의 '삭센다 대란' 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마치 '미용업계의 허니버터 칩'이라고 불릴 만했다. 또한 삭센다의 열풍은 가히 국제적이었다. 인슐린과 GLP-1 agonist 생산을 주로 하던 이전까지 특별한 블록버스터 약물이 없었던 덴마크의 제약회사인 노보 노디스크는, 삭센다와 빅토자의 출시와 더불어 전 세계 비만치료제의 43%, GLP-1 길항제 시장의 47%를 차지하며 관련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하였으며, 삭센다는 2018년에도 세계적으로 전년대비 53% 의 매출액 증가를 보이며 식지 않는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삭센다는 전성기의 허니버터 칩만큼이나 구하기 힘든 약물이었다. 다만 효과는 정 반대...

   삭센다 (Saxenda, liraglutide)는 원래 체중감소를 목표로 개발된 약물이 아니었다. 노보 노디스크에 의해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GLP-1 유사체를 통한 보조요법용 약물로 개발 및 시판된 자가 주사제형 치료제 Victoza 가, 타겟으로 목표한 용량보다 더 높은 용량을 사용하였을 때 본래 약품의 일차 목표인 혈당 감소와 더불어 유의한 체중감소 효과가 임상시험 중에 발견되었고, 이를 놓치지 않은 노보 노디스크는 Victoza의 원료인 liraglutide를, 똑같이 펜 타입 자가 주사제의 형태를 가진 채로 용량을 높이기만 한 아예 다른 제품으로 새롭게 생산하여 FDA 승인을 얻은 것이 바로 삭센다이다.

우리가 잘 아는 파란 다이아몬드 형태의 약물과 개발 스토리가 비슷하다. (출처 : Pfizer)

    자가 주사제라는, 어찌 보면 일반인이 쉽게 다가가기 힘든 제형인 이 삭센다가 이토록 국내에서 대유행을 일으킨 원동력은 무엇일까? 결국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두 가지는 '약의 효과'와 '적극적인 마케팅' 일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출시된 비만치료제 중, 삭센다는 임상 시험에서 밝혀진 체중 감소의 효과가 가장 강력한 약물이며, 실제로 삭센다를 자가 주사한 후 식욕의 변화와 체중감소를 경험한 후기들이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더불어 삭센다 출시 이후 병원과 제조사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큰 역할을 하였는데, 그러한 배경에는 의약 분업이 시행된 이래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경구 약물 (입으로 먹는 약)을 직접 조제하고 판매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에 반해 삭센다는 자가 주사제이므로 직접 판매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꽤 괜찮은 마진을 주는 삭센다 주사제는 병원의 입장에서 '많이 팔 수록 이득'인,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가장 핫한 키워드 - #삭센다 (출처 : 유튜브)

    그러나 유행이 너무 뜨겁다 보니 결국 선을 넘게 되었는데, 이는 삭센다가 반드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전문의약품임에도 불구하고 중고장터에서 일반인들 간의 거래가 뜨겁게 이루어지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이 또한 비아그라와 많이 닮았다). 또한 삭센다는 18mg 제형을 몇 번에 걸쳐 나누어 주사하기 때문에 교차 감염 위험성으로 인해 반드시 한 명만 사용해야 하는데, 한 명이 쓰던 '중고' 삭센다가 버젓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중고 거래 매물로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약품의  indication에서는 BMI 가 27을 넘는 '일부' 중등도 비만 환자와 30이 넘는 고도 비만 환자에서의 사용을 권고하고 있으나, 160cm 인 성인 여성 기준으로 체중이 70kg가 되어야 BMI 인 27 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삭센다를 투여하고 후기를 남기는 여성들은 BMI 27에 턱없이 모자라는 체중을 가진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처방은 정상이나 경한 과체중 환자에게 처방된 off-label usage 였다. 마지막으로, 삭센다의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인 갑상선암 유발 가능성에 대하여 전혀 고지되지 않은 채로, 무분별한 처방이 이루어진 것 또한 큰 문제점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빅토자의 갑상선암 유발 가능성에 대하여 충분히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17년 9월 5천7백만 불에 달하는 벌금을 미국 법무부로부터 부과받기도 했다).

중고거래 삭센다. jpg (출처 : 헬스코리아뉴스)


    다행히 관리당국의 규제와 함께 의사들의 자정 노력이 이루어지며 작년과 같은 일반인들 간의 불법 중고거래나 절차 없이 이루어지는 투약은 거의 없어졌다고 하지만, 식욕 억제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약이 필요한 약품의 특성상 삭센다의 수요는 아직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2018년을 뜨겁게 달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삭센다의 대유행은 일반 대중들의 더 날씬한 외모에 대한 지나친 집착, 비급여 미용 시장의 왜곡된 출혈경쟁과 병원의 이윤 창출에 대한 욕구, 그리고 폭발적으로 증가한 소셜 미디어 마케팅이라는 3박자가 어우러지면서 발생한, 성형외과 전문의의 입장에서 보기에 조금은 씁쓸한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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