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떠나는 가족여행. 크루즈 여행이 두 번째인 이번 여행은 큰아이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가까운 곳에라도 매년 갔던 여행이, 일정 맞추기가 어려운 직장인이다 보니 몇 년 만에 떠나는 것이다. 여행 준비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큰애는 가족구성원 모두의 것을, 작은아이와 막내는 본인들 것만 구입한다. 이렇듯 누가 장남의 무게를 주지 않았어도, 큰아이의 행동은 꼭 지 아비같이 행동한다. 그런 모습이 늘 마음 아펐다. 일찍 철든 자식을 본다는 건 어미입장에선 마냥 좋은 건 아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애처롭고 미안하다.
크루주여행의 장점은 각자 원하는 프로그램을 즐기다 저녁 식사시간에 모인다. 저녁때마다 메뉴가 다른 풀코스의 식사는 눈과 입이 모두 맛난 음식들이다. 초대받은 만찬에 환대를 받는 것 같아 참 좋다. 나는 주로 선상에 올라 해돋이와 노을 보는 걸 좋아했고,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각자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시간을 보내도, 배안 어디에 있다는 안도감은 여행의 장점이다. 아이들의 추천으로 추가지불 해야 들어갈 수 있는, 천장이 아름다운 사우나실에 가게 됐다. 커다란 흰 수건을 머리에, 몸에 휘두른 채 멋진 사우나 테이블에 누워 잠을 자려했지만 오지 않았다. 시설의 부유함이 낯설면서도, 싫지 않은 공간에 내가, 아이들이 웃는 세월이 된 것이 감사했다.
내가 해돋이와 노을을 맞이하는 마음은, 어릴 적 엄마가 커다란 장독대 위에 물 한잔 올려놓고 밤낮으로 가족을 위해 기도드리던 모습처럼 경건했다. 지상보다 더 웅장한 해돋이를 볼 때면 그 위엄이 내 자식에게 어떤 힘이 될 것 같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아이들의 축복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노을이 뜰 때면 나는 또 그 선상에서 올라 살아있을 때까지 자식에게 도움 되는 어미가 될 수 있도록 기도 했다.
아이들의 축복을 빌기 위해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서둘러 일어났고 더 멋진 노을을 보기 위해 선상으로 올랐다. 이렇게 하길 4일째. 나 자신이 저무는 노을로 비유했던 지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노을도 떠오르는 힘이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걸 알았다. 지는 게 아니고 , 떠오르기 위해 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라는 걸 큰아이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해돋이의 의식? 이 끝나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큰아이가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린 자연스럽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여행을 주선해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며칠 동안 내가 보고 느낀 해돋이와 노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간 아비에 대해, 또 언젠가는 떠날 어미에 대해 블랙커피를 마시면서 운을 뗐다.
"먼저 간 아비는 너희같이 올라오는 태양을 위해 밑받침하다 남들보다 조금 먼저 갔을 뿐이고, 또한 앞으로 노을이 될 이 어미도 이 역할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매 순간이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라고 말을 건넸다. 이성적인 아들은 "노을이 된다고 우리가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노을을 맞이한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건 자연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노을도, 해돋이 모두 서로를 받쳐줬기에 아름답기에 모두 위대하다"라고 말했다.
먼저 간 아비에 대해, 나의 소심한 염려에 아들은 버티다 먼저 간 아비도, 지금도 버티는 우리들 모두 위대하다는 말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아이들 아빠가 하늘로 떠나고, 20년이 되어가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자식과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 것이 처음이다. 내가 생각한 나의 삶이, 아비의 삶이 노을이 되든, 해돋이가 되든 이젠 편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떠오르는 태양도, 부모가 밑받침되는 노을도 아니라는 것. 서로 밀고 당겨주기에 아름다운 것이라 말할 때의 그 장면은 내 삶의 최고의 명장면이다. 내 삶이 노을 지다가 아니고 밝은 해돋이가 되기 위한 자연의 이치라는. 그 이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임을. 인간의 삶을 육체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영혼의 이치를 깨닭게 해줬다. 그렇다 몸이 어디에 있든 사랑하는 가족의 영혼은 언제 어디서든 영원한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