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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당고수 N잡러 Jun 27. 2023

대학 전공은 직업, 진로와 무슨 관계일까

식품영양학과 남자 졸업생 이야기

사회 생활하면서 정말 다양한 모임과 만남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현재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만 4,000명이 넘으니 누구보다 많긴 한대 과연 이 사람들이 모두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은 학연, 지연, 혈연관계가 중요하다고 하고, 누구는 전 세계 어디나 그건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누구 말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고, 결국 나의 경험과 생활에 어떤 영향이 큰지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대학 동문들을 만나서 운동도 하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참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갔습니다. 모두 아이가 있는 학부모이자 전문직(회계사, 감정평가사, 변호사)이었는데, 하나 재미있는 것은 남자로서 선택하기 어려웠던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는 것이 공통점이었습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공통점은 모두 전공을 살리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방황을 한 것 중 전공 선택이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식품영양학, 수학교육학, 미국통상, 중국통상, 동북아통상, 중어중문, 법학, 유아교육, 웹소설창작, 청소년교육. 중간에 그만둔 것도 몇 개 있지만 지금까지 제가 공부해 본 것들입니다. 참 다양하고, 연결이 안 되는 것 같은데 크게 보면, 교육과 통상, 법학, 식품 정도로 나눌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은 수시를 준비하려면 어려서부터 적성을 고려해서 진로를 선택한 후 준비해야 한다는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저는 완전히 실패자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공통점을 가진 식품영양학과 남자 졸업생들도 모두 졸업장과 영양사 면허증이 있지만 다시 대학 전공과는 무관한 시험을 위해서 수년간 젊음을 쏟아부었으니 어떤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거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을 준비했던 수험생을 생각하면 또 그다지 달라 보이지도 않습니다.


고등학교 성적과 생활은 대학 입학 시 매우 중요한 입시자료로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우리 남자 동문들은 일단 성실함의 기준이 무언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성적 이상으로 대학에 무난히 입학했지만 대학생활은 모두 평균정도나 그 이하의 성적을 거두는데 그쳤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전공과 전혀 다른 일을 20년 가까이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보면 우리는 모두 대학 전공 선택의 실패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4년, 8학기의 대학생활을 허송세월 했다고 볼 수도 있고, 그저 간판으로 졸업장, 학사 자격을 갖춘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결론을 짓기에는 뭔가 허전합니다.


우리는 대학에서 학과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동아리나 연애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리고 같은 과뿐만아니라 고등학교 동문이나 동아리 선후배를 통해 전공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는 우리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주변 고시원, 서점의 게시판 덕분에 전문직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기도 했고, 주변에 많은 지인들이 시도하는 시험이었기에 ‘나도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나 ‘쟤도 하면 나도 되겠군’이라는 근자감을 갖게 된 것도 대학 생활의 가장 큰 소득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중년이 지난 나이에도 여전히 나에게 맞는 전공, 진로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알아가고 살아갈수록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평생 해도 지겹지 않게 행복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있는지 의문이 더 커집니다. 겉으로는 멋지게 보이는 유명 연예인, 셀럽, 작가 등  TV에서 보는 사람들의 힘겨웠던 과거를 조금은 알게 된 나이가 되니 철없던 시절처럼 인생에 한방이 있다거나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고, 나만 잘할 수 있거나 나의 재능이 보석처럼 빛나기만 하는 일이 있을지 점점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주어진 갈림길에서 나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그 일을 하다 보면 여유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약간 멍 때리거나 다른 쪽을 쳐다볼 수 있는 틈이 잠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진로, 꿈, 이상을 위한 전공 선택은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허상이고, 미래에 가질 직업과 얼마나 연관이 있을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결론만 나옵니다. 연구를 좋아하고 남을 가르치기 좋아해서 교수가 되려는 사람은 어느 전공이든 본인이 싫어하지만 않은 분야라면 충분히 교수가 될 수 있습니다.  CEO가 되고 싶은 사람은 전공과 무관하게 직장 경험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창업을 하면 되지 반드시 경영학과나 창업대학원을 졸업할 필요도 없습니다.




N잡러가 되어보니 내가 하고 있는 하고픈 직업과 진로는 대학 전공과는 무관하고 결국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어느 것인지가 중요하되,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문직인 경우는 자격증이 필요하니 특정 학위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이수하면 됩니다. 특히 변호사의 경우 이제는 법대도 거의 없지만 실무를 하는 많은 변호사들이 법학과 무관한 전공으로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 활동에 훨씬 도움 된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평생교육이기 때문에 20대부터 6,70대까지 반드시 학위과정이 아니더라도 배움에 목마름을 적셔줄 곳이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지역의 사회복지회관, 도서관과 문화센터와 같은 공적인 곳부터 에어클래스나 클래스 101 같은 온라인 사교육까지, 직장인이라면 내일 배움 카드 등을 가지고 무료로 배울 수 있는 학원도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결국 대학 전공이 뭐가 중요하냐는 너무 뻔한 얘기가 되어 버렸지만, 실제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남자 졸업생만큼이나 다른 학과 남녀 졸업생 모두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직업을 찾아가는 경우는 의대나 간호대, 사범대 등 특수 목적 학과를 제외하면 정말 다양한 직업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됩니다. 학과에 따라 커트라인의 편차가 크고, 복수전공이나 전과의 단점이 있으니 되도록 처음 선택할 때 제대로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언제든 다시 되돌릴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 편히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두려움 없이 길고 긴 인생에서 조금은 부담 없이 전공을 선택했으면 합니다. 첫 번째 전공선택에 실패했다고 인생이 실패한 것은 절대로 아니니까요. 두 번째 우리가 사는 인생은 단기가 아닌 장기로 수십 년을 살아야 해서 도저히 하나의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끝날 수는 없으니 직업을 바꾸는 것이 죄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바뀝니다. 내가 한번 마음먹고 시작한 것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애정이 식을 수도 있고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맞긴 했지만 그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니까요. 2023년 7월 7일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가서 진로특강을 하게 됩니다. 진로상담 선생님께서 제 책을 우연히 읽으시고 너무 맘에 들어서 30권을 사서 학교 도서관에 놓고 아이들에게 진로지도용으로 사용하신다고 하시면서 저자 특강을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요청해 와서 가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이 됩니다. 아직 사회에 첫발도 딛지 않은 미성년 학생들에게 절망적인 사회현실만을 알려줄 수도 없고, 성취가 어려운 꿈만 얘기할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하게 하나는 알려주려고 합니다. 전공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


아래는 그동안 제가 다닌 학교 리스트입니다.



·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졸업(학사)

· 인천대학교 미국통상, 중국통상 졸업(학사, 복수전공)

· 인천대학교 동북아통상학과 대학원(석사)

·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석사) 

·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박사과정 중퇴

· 상명대학교 수학교육학과 중퇴

· 한국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중퇴

· 한국방송통신대 유아교육과 수학

· 한국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 3학년 재학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전히 저는 아직도 제 적성을 잘 모르겠고, 내가 행복하고 내 인생을 걸만한 직업을 찾지 못해서 여전히 방황하고 안테나를 열어놓고 두리번거리면서 다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죽기 전에는 찾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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