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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Sep 05. 2020

김태완, <경연, 왕의 공부>를 읽고

모처럼 책을 한 권 다 읽었다. 사실 책이라는 것이 자투리 시간에 보기에 참 좋은 수단이다. 핸드폰을 들추어 유튜브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잃어버리는 아날로그를 찾아가는 '맛'이 있기에 나는 자투리 시간을 독서에 할애한다. 단점도 있다. 과연 책을 조각낸 시간에 제대로 읽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대두된다. 어떤 책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반복해서 읽거나, 밑줄 친 부분이나 메모해둔 부분만 솎아내 정리 차원에서 읽을 경우에는 효율이 높다. 마치 우리가 학창 시절에 외워둔 영어 단어장을 꺼내 중얼거리며 짧게 복습하거나, 단권화 노트를 읽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집중을 해서 새롭게 읽어야 하는 책들을 전철이나 버스에서 이동하며 읽기란 대단히 어렵다. 흔들리고 시끌시끌한 외부환경도 그렇지만 10분, 20분 내용에 완전히 집중하여 독해를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연, 왕의 공부>는 그 자체로 무거운 철학책은 아니기에 이동하면서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조선시대 말로만 들었던 '경연'의 옛 기록들을 엮어 경연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당시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등을 작가와, 과거 기록을 남긴 사관 혹은 유학자들의 견해를 보여준다. 


이 책은 여러 장점을 가진다. 먼저, 역사책으로서 훌륭하다. 성종, 선조 등 경연 자체의 기록이 풍부한 조선시대 임금들을 선별해 경연의 기록을 발췌했다. 그러다 보니 그 임금의 통치했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들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율곡 이이의 <경연 일기>를 발췌한 이 책 후반부의 경우, 폐단이 극심해 터지기 직전의 조선 사회와 조정 내 사림과 훈구파의 대결, 훈구파 몰락 후 사림끼리의 대결 등이 자세히 기록됐다. 물론 이이의 시각에서 말이다. 제도권 교육에서 연도로서 잠시 배웠던 시대적 상황을 조금 더 생생하게 그리고 자세히 엿볼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은 이 책 저자의 시선이다. 저자는 경연에 관련된 사료를 다른 글씨체로 올린 뒤 자신의 해설과 평을 덧붙였다. 종종 저자의 시대를 통찰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읽을 만하다. 물론, 저자의 정치적, 사회적 견해가 나의 의견과 다를 때도 있으나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현시대를 통찰하려는 저자의 노력에 나는 공감한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유학과 유학자들에 대해 새롭게 다가갈 수 있었다. 우리가 유학자 혹은 사대부라고 하면 '꽉 막힌 사람들, 꼰대, 망국의 지름길' 등으로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사람보고 너는 '유교적인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면, 유학의 참된 의미를 깨닫기 위해 '수기치인'하며 실천을 서슴지 않는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 옛날 사고방식에 머물러있고, 권위적이며, 남녀유별을 외치는 등 시대에서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경연의 본래의 의도가 숭고했던 것처럼 이 책은 당시 사람들의 유학에 대한 생각과 행동 그리고 저자의 해석을 통해 고대 중국에서 이어진 학문이자 이념으로서의 유학이 어떠한지 객관적으로 잘 보여준다. 즉, 이황, 이이, 기대승 등 조선 중기 천재 유학자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유학이 꿈꿨던 행동, 사회, 가치관이 어떤지 보여준다.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일례로, 유학자들의 국가관은 '지치(배움, 지식으로서 나라를 다스림)'에 근거한다. 마치 그 옛날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들이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비슷해 보인다. '지치'를 위해서는 왕과 유학자인 신하들 모두 끊임없이 공부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 토론의 장이 바로 경연이었으며 지도자는 과감하게 배운 내용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의 배움의 목적은 실천에 있다. 특히 이이의 <경연 일기>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이황과 이이의 성격, 그들의 발언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그 천재들이 어떤 천재들이었는지 어떤 인간이었는지 우리는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그들은 유명한 지폐 속 인물들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한 것이 맞는가? 늘 메타인지 할 필요가 있다.


단점도 물론 존재한다. 사료 부분의 글씨체가 작고 묘한 회색으로 돼있어 읽기가 불편했다. 한문을 번역해 인용한 이 부분과 저자의 해설 부분 및 본문과 구별하기 위해 조치한 것이라고 이해되긴 하지만 작고 다소 흐려지는 색상에 장기간 읽기에 눈에 피로가 많이 밀려왔다. 


이 글의 목적은 평이 아니라 내 생각 정리에 있으니 이제 메모해둔 부분을 간단히 인용하며 마치고자 한다.


 1.

경연관에는 여러 가지 자질이 요구되는데, 지나치게 변론에 힘쓰고 말재주가 뛰어나거나 너무 소극적이어서는 안 되고, 온화한 얼굴빛과 조리 있고 분명한 말솜씨가 첫째가는 요건이며... 당당하게 소신을 피력하면서도 온화하고 조리 있게 주장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115p)

어디서든 마찬가지지만 스스로를 표현하고 전달하는데 필요한 미덕은 시대를 막론하고 동일하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신중함이 묻어 있어야 한다. 


2.

플라톤은 이상 국가를 만들기 위해 통치자의 교육을 아주 꼼꼼히 구상했다... 학문을 할 수 있는 기본 소양과 조화 있는 성격을 형성하게 한다... 5년간 철학의 예비 과목을 익히게 하고, 15년간... 철학적 수련은 계속되며 이렇게 50세가 되어서야 최종 선발 과정에 든다... 동양에서도 귀족과 제왕의 자제를 위한 기본 소양 교육으로 육례를 제시했다... 15세가 되면, 대학에 들어가 궁리정심, 수기치인의 차원 높은 윤리학과 정치학을 배웠다. 이것이 고대사회의 교육체제였다. (125p) 

철학책을 읽으며 흥미로운 점은 교류 없던 시절의 동양과 서양에 공통점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진리에 가까운 무언가가 아닐까? 입이 아프겠지만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 철학 교육은커녕 독서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공정성의 이름과 대학입시를 위한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독서와 토론은 수십 년간 사라졌다. 어떤 작가는 이것이야 말로 노예교육이 바뀌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당신은 지금 철학을 공부하는가? 나는 언젠가 이러한 자아비판에서 시작돼 철학책을 붙들고 읽어나가며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고 이렇게 글이라도 남겨본다. 


3.

요즘 아이들은...이라고 운을 떼면 듣는 요즘 아이들로서는 기분 나쁘겠지만, 정말 요즘 아이들은 불쌍하다... 청소년 때 청춘의 특권인 낭만의 열정을 발산하지도 못하고 감수성의 열병을 홍역처럼 치르지도 못한, 쭉정이만 남은 영혼의 메마른 정도의 순서... 옴짝달싹도 못한 채 청춘을 저당 잡힌 불쌍한 영혼들이다.... 이해 안 되는 구절을 몇 번이나 되새겨 읽고 그리하여 행간을 읽는 눈을 누구도 키우려 하지 않는다... 남이 씹어서 잘게 이긴 것을 입만 벌려서 받아먹는다. (127p)

다소 과격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신랄한 저자의 시선이 아닐까 싶다. 나도 요즘 아이들에 아직(?)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어떤 이야기이든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다 듣고 가치판단을 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맞는 말을 하는 어른들 조차 '틀딱', '꼰대', '라떼는 말이야'로 매도하는 오류를 범한다. 건전한 비판과 분석도 없이 그저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비꼬거나 버럭 하는 나이만 앞선 사람들을 변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저 말 어디에도 내가 부정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2030 세대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보자. 그토록 스트레스받으며 20대 초반의 나를 희생하며 공부한 당신, 지금 얻은 것이 무엇인가? 잘됐으면 좋은 직장을 얻어 '아 출근하기 싫다'를 반복해 외치지 않는가? 존 스튜어트 밀은 우리의 삶에 '다양성의 꽃'이 피워 개별성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야 개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사회는 더 큰 발전을 위한 자유를 얻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과감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에서 부담 없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4.

경연에서 공부하는 철학은 인간의 존재와 세계의 의미를 묻고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며... 왕은 경연을 통해 철학으로써 세계관을 확립하고, 역사로써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악한다. 인문학적 성찰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필수적인 요소다. 정치가든 사업가든... 누구라도 인문학적 성찰은 꼭 필요한 것이다. 인문학은 우리가 왜 사는지,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학문이다. (139p)

공감한다. 경연의 취지 또한 이토록 대단했다. 


5.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은 학식은 물론 도덕성도 겸비해야 한다... 조광조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자, 사림은 향리에서 <소학>을 가르치고 향약을 보급해 향촌사회의 질서를 재구성하고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이론 무장을 다졌다. (280p)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과거 고시를 합격하고 좋은 학교를 나왔지만, 그 후 어떤 공부를 지속했는가? 정치공학이라는 시대적, 경험적 단어를 내세워 단지 얄팍한 처세에만 급급하지 않았는가? 누군가 말했다. 이제는 이념이 없는 시대라고. 되묻고 싶다. 이념이 없이 어떻게 일관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선택에 대해 제대로 된 변론 하나 못하는 논리 부재의 선택을 어떻게 유권자는 믿고 있어야 하는가? 이념의 부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을 생산적이고 온건한 방식으로 경쟁하는 것을 국민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정치인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경연에서 왕이 당대의 천재들과 정책을 토론하고 과거를 성찰한 것처럼 그들은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6.

도학이란 자기를 수양하는 학문인데, 조광조야말로 조선에서 그런 학자이다. 조광조는 뚜렷한 전승을 가진 유학의 정맥을 이어받아 독실하게 실천하고,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여 스스로 깊이 터득했다... 이이가 조광조를 도학의 진정한 전승으로 본 것은, 조광조가 전도의 핵심인 수기치인이라는 이념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331p)

나는 이 책의 기록들을 읽으며 조광조라는 인물에 대해 새롭게 보게 됐다. 그의 성격에 대한 평가와 학문적 업적, 그리고 명예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면서 단지 '잘 나가다가 모함받아 억울하게 죽은' 한 명의 정치인이라는 얄팍한 지식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다. 누구나 단점은 있다. 그에게 부족했다면 지나치게 급진적이었다는 것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급진성을 이해해줄 당시의 분위기도, 주변의 선배들도 없었기 때문에 그의 역량이 꽃피지 못했던 것 같다. 핵심은, 그는 배운 것을 실천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7.

이황과 이이의 만남은 두 현인의 삶에서도 진달래가 활짝 피고 수양버들이 휘늘어진 봄날의 산천을 그려낸, 맑고 투명한 아름다운 수채화 한 폭과 같다... 당시 이황은 58세, 35년의 나이차를 극복한 학문적 동반자의 만남이었다. (334p)

이 책 후반부에는 이황과 이이가 만나 나눈 대화가 자세히 묘사돼있다. 이 두 천재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만나 주고받은 시조가 담겨있는데 그 장면이 진정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부럽다. 터놓고 시류를 논할 수 있고, 풍류를 즐길 줄 알며, 나이를 극복할 정도의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얼마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을까? 



마무리를 하자면, 이 책은 단순히 경연이 무엇이고, 경연이 어떻게 행해졌으며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만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경연이라는 소재를 통해 다시 유교 선비들의 이상과 현실이 신랄하게 분석돼있으며, 때로는 당대 인문학 천재들의 시선을 통해 그들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공부에 대한 열의 그리고 그들의 생각의 깊이까지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동양철학, 그중에서도 성리학 자체에 대한 흥미가 매우 높아졌다는 점이다. 조선시대는 결국 성리학의 치국 이념으로서 실패한 것으로 결론 났으나, 어디 그것이 이념이 잘못돼서 실패한 것일까? 작게는 개인의 발전을 위해, 크게는 한 국가의 발전을 위해 여전히 여운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작가의 마지막 말이다.


경연은 국왕의 평생교육이었다. 왕은 경연에 참여함으로써 재위 기간 늘 권력의 공공성을 각성하고 자신의 권력 사용에 대해 성찰해야 했다... 경연에서 끊임없이 학자들과 경전을 강론하고 역사를 성찰하고 정책을 검토한 조선시대 역대왕들 가운데에서도 성공한 왕은 몇 되지 않는다... 국왕의 교육과 학습이 아니라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사람으로서 매우 소중하고 본질적인 일 가운데 하나이다... 배움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신을 앞으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내가 배우고 깨달아 안 것을 정리하고 줄기를 잡아서 다음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서 더욱 넓혀가는 것이 교육이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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