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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상남 Feb 17. 2021

마키아벨리 <군주론>을 읽고

군주론은 서문에 나와있는 것처럼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던 메디치 가문의 로렌조에게 헌정한 책이며,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올바른 군주의 상을 통시적으로 주요 인물과 사건을 분석해 제시하는 '교과서'에 해당한다. 


먼저 개인적인 감상을 미리 밝히자면 "참으로 먹먹하지만 부정하기도 어렵고, 납득하기도 어려운" 아리까리한 책이다.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초 이탈리아 반도의 어지러운 내정과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어쩌면 군주정이 만연하던 당시를 살아가던 마키아벨리에게 강력한 군주의 상은 필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군주론이 많은 이들에게 독재를 옹호하거나 폭력적으로 비치는 것은 어쩌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다. 


먹먹했던 점은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성격적 특성을 나열하며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 여러 도덕적 가치들을 끌어들여 우열의 비교를 하는 데 있다. 관대함(generosity), 선함(being good), 잔혹함(cruelty), 감사와 두려움 (gratitude and fear) 등 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가치와 실제 군주가 가져야 할 가치를 비교 분석하기도 한다. 이 책의 묘미는 군주의 상을 단순히 기술하는 것을 넘어 알렉산더 대왕, 체사레 보르지아, 스포르자, 터키의 과거 술탄,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와 하니발 등 많은 위인들을 역사에서 불러 그들의 사건들을 분석하며 그 가치들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군주론은 단순히 사상 책임을 넘어 역사책과도 같다. 


정체(polity)에 관한 분석과 각 정체 별 필요한 군주의 상이 초반에 묘사가 되고 그 후에는 개인으로서의 군주가 갖추어야 할 위 덕목들이 서술되는데 오늘 독후감에서는 후자에 관해 몇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1. 군주는 '좋은' 사람이어야 할까?

아마 적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정치인들에 대한 낮은 신뢰도에 기인해, 정치인들은 자기 잇속만 챙기는 나쁜 사람이며 좋은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단연코 '좋은 사람'이라는 덕목이 군주에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것이 곧 반대인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더욱이 아니다. 그의 입을 그대로 빌리자면,


We'd all agree that it would be an excellent thing if a ruler were to have all the good qualities mentioned above and none of the bad; but since it s in the nature of life that you can t have or practice all those qualities all of the time, a ruler must take care to avoid the disgrace that goes with the kind of failings that could lose him his position.


즉,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군주가 스스로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나쁜 자질일지라도 힘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마 이런 논조가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만 곱씹어보더라도 지극히 당연한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군주정이 만연하던 시대에 군주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군주에게 있어 제 일의 원칙은 군주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현대에도 정치인들의 목표는 office-taking이며, 국제정치의 제 일의 원리 또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여기에 덧붙여 안 좋은 명성에 목매지 말라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본인이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하며 자리에서 내쫓기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불편하지만 군주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없어 보인다. 


2. 군주는 관대함을 가져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 마키아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Generosity practices out of real good will, as it should be, risks passing unnoticed and you won t escape a reputation for meanness. If he has the resources to defend his country, isn't obliged to steal from his subjects or prey on others and is in no danger of falling in to poverty, a ruler need hardly worry about a reputation for meanness; Above all else a king must guard against being despised and hated. Generosity leads to both.


우리 모두는 관대함이 좋은 것을 알고 잇다. 그러나 그것과 군주가 자신을 보전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치사하다는 세간의 평에 게의치 말고, 자기 나라를 지키고 신민들을 굶기지 않으며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 첫 의무임을 역설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대하다고 평을 듣는 것보다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3. 사랑받는 군주와 두려움을 받는 군주, 누가 더 나은 군주인가?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명쾌하게 답을 한다. 

A prompted question: is it better to be loved rather than feared, or vice versa? The answer is that one would prefer to be both but, since they don t go together easily, if you have to choose, it is much safer to be feared than loved.

두 가지가 함께 가기 어려운 탓에 두려움을 받는 것이 군주에게는 낫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생리에 대해 덧붙인다. 


Men are less worried about letting down someone who has made himself loved than someone who makes himself feared. Love binds when someone recognizes he should be grateful to you, but, since men are a sad lot, gratitude is forgotten the moment it's inconvenient. Fear means fear of punishment, and that s something people never forget. Being feared is perfectly compatible with not being hated.


인간은 감사함에 대해 빨리 잊는 반면 두려움은 결코 잊지 않는다. 두려움은 앞서 말한 군주가 신민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 것과 완전히 함께할 수 있는 덕목이다. 


현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대체 왜 군주론을 읽어야 하는가? 나는 책을 꼼꼼히 읽고 위와 같은 마키아벨리의 신랄하고도 자조 섞인 인간의 생리에 대한 분석을 들고 싶다. 우리가 "어른은 다 그런 거야", "사회생활은 다 그래"라고 치부해왔던 그 검은 그림자들을 적나라하게 떠벌리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지 않은가? 수백 년이 흘렀어도, 시대가 바뀌고 정치체제가 송두리째 바뀌어도 사람의 본성은 정녕 변하지 않는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가슴이 먹먹했던 점은 바로 이것이다.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은 나부터가 감사함을 잘 잊은 채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런 내가 역설적으로 그러한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상처도 받았기 때문이다. 


4.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군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정치 지도자들은 현재도 많은 공약을 내세우고 있고, 소리 소문 없이, 사과 한 마디 없이 사라지는 공약들도 많다. 우리는 그저 한 순간의 "또 시작했네"라는 자조 섞인 비난 한 번 날리고는 금세 잊는다. 


Everyone will appreciate how admirab le it is for a ruler to keep his word and be honest rather than deceitful. However, in our own times we've had examples of leaders who've done great things without worrying too much about keeping their word.  A sensible leader cannot and must not keep his word if by doing so he puts himself at risk. 


마찬가지로, 자리보전이 어렵게 만드는 약속은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또한 독자들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도 있고, 크고 작은 리더의 자리에서 사람에 데이며 속을 썩여본 사람들은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밖에도 군주론에는 대중의 속성을 분석하기도 한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이 모든 덕목에 대한 판단, 사람에 대한 판단은 군주인 자가 군주의 자리를 보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으로, 그 어느 곳에도 한 인간이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나는 마키아벨리 자체가 염세적이거나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그 시기 피렌체 내부의 혼란스러웠던 군주정과 공화정의 실패 등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마키아벨리의 입장에서 어쩌면 체사레 보르지아와 같은 강력한 군주는 그의 상상 속 소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책을 읽음에 있어 단순히 현대의 시각으로만 가치 판단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모든 필독서는 현대의 사상과 신념에서 '옳은' 것만 추천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작은 리더의 자리를 겸하며 쓴 맛을 보았던 과거의 내가 품었던 정의감과 선하고자 했던 의지가 마키아벨리에게 얼마나 어설퍼 보였을까 생각하니 무언가 먹먹했고, 납득도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휴머니즘의 회복이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 믿는 사람이기에 반은 맞으면서 반은 틀리다고 사색하게 됐다. 과연 마키아벨리는 인간에 대해 어떻게 정의 내리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을까? 문득 그에게 묻고 싶어 진다. 


인용 참고도서:

The Prince, Penguin Classics, 7.99 파운드, 런던에서 내돈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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