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2008년 말, 나는 고3을 보내고 슬픈 대학입시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지역에서 유명한 고등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 하는 아이들을 모아둔 이른바 '심화반'을 거쳤다. 스스로도 고3을 열심히 보냈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물심양면 나를 배려해 주었다. 하지만 결과는 목표로 삼았던 대학에 원서조차 낼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재수를 결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잘하다가 막판 수능 때 망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수능을 '잘' 보았다. 내 머리가 원하던 대학에 갈 성적이 안 됐을 뿐이지, 내 실력만큼 점수를 제대로 실수 없이 받았다는 의미다. 특히 고3 시절 흔들림 없이 안정감 있게 공부를 했다. 수능시험 때에도 크게 긴장하지 않고 무난히 잘 치렀다. 심지어 수능이 끝나고 나는 가족과 함께 기분 좋게 밥도 먹었고, 점수가 발표되고 나서도 굉장히 낙관적이었다. 물론, 그것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헛된 자신감이었다. 그래서 점수는 내가 공부해 온 만큼 정직하게 1년간 성적이 우상향을 그리며 무사히 잘 받았다.
그저 한 마리 우물 안 개구리였기 때문에 더 높은 차원의 수준을 맛보지 못한 결과였지 않았나 싶다. '열심히'한다의 의미도 다양할 수 있었고, '잘한다'의 의미, '경쟁'의 범위 등 나의 시야가 총체적으로 좁았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커 재수를 결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신속히 결정이었을지언정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2008년이 채 끝나기도 전, 상향 입학원서를 쓰기 전에 가족회의를 거듭 거쳐 대입재수를 결심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식탁에 앉아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친척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대학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 보았다.
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 했을까? 여러 사람들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마음은 단순했다. 대학입학이 중요해 수험생활을 힘들게 보냈으니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지방 시골이 아닌 서울처럼 넓은 물에 나가 폼나게 놀고 싶었다. 대학 간판이 나를 먹여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어렸고 그런 존재에 대한 사유는 요원했다. 단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원했을 뿐이다.
후에 다시 분석했지만 당시 내 성적은 표준점수 기준 문과 상위 약 4% 이내로 추정됐다. 나는 우리 학교에서 전교 10등 안팎을 오가는 성적이었다. 그러므로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들어가도 나름 이름이 잘 알려진 서울에 있는 중상위 대학에는 입학할 수 있었다. 1년 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인생에 '도전'이라는 발걸음을 처음으로 내디뎌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입학원서는 재수를 염두해서 모두 상향으로 쓰게 되었다. 결과야 뻔했다.
나는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민족의 대명절 설날에 공식적으로 재수의 시작을 고하게 되었다. 설 세뱃돈을 받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쓰라렸다.
2009년 초 그 해 겨울은 굉장히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