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문
석호와 고민해 결정한 경기도 광주의 기숙학원에 대해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가족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등록을 할 수는 없다. 1년 간 수험생활을 할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최종 결정을 하기 전 신중히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1월 우리 가족은 차를 몰고 머나먼 경기도 광주로 향했다.
기숙학원은 과연 어떤 곳일까?
아무리 기대이상으로 휘황찬란하게 대리석들이 번쩍번쩍한 로비를 보았더라도 내심 걱정이 많았다. 기숙학원은 대부분 산속에 있다던데 정말일까? 언덕 위의 하얀 집? 철조망으로 학생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온갖 괴담이 즐비한 곳 아니었던가. 자가용으로 부모님과 함께 고속도로를 타는 내내 의미 없는 생각들이 내 머리를 계속 스쳐 지나갔다.
세네시간 정도 흘렀을까, 마침내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지방에 살다 보니 수도권이라 해봐야 종종 서울을 가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수도권 하면 서울처럼 화려하고 현대화된 도시일 줄 알았는데 광주시를 처음 봤을 때는 말이 수도권이지 지방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오히려 공단 지역을 통과해서 그랬는지 도로나 건물들이 때로는 내가 사는 곳보다 더 지저분해 보였다.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을 검색해도 학원가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새 완전히 들판에 산과 나무 그리고 물만 보이는 곳을 지나고 있었고, 정말 이런 곳에 공부하는 학원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적막한 더 깊은 산골로 들어섰다. 세간의 말이 사실인가 보다. 산 꼭대기에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공부를 하는 곳이 있다는 그 풍문 말이다.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안내받은 대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갈수록 인적이 끊기고 산과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이런 곳에서 정말 공부를 하는구나.'
게다가 남부지방인 우리 동네에서는 정말 보기 어려운 눈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전 날 왔는지 두툼하게 쌓인 눈들이 내 복잡한 심리와는 모순적이게 차창 밖으로 장관을 이루며 새하얀 설경을 넓게 펼치고 있었다.
"oo기숙학원 990m"
들판 한가운데 쓸쓸히 안내하던 표지판을 지나 구불구불 무갑산을 따라 올라갔다. 차 두대가 한 번에 교차하기 어려운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꽤 큰 전원주택들이 띄엄띄엄 마음을 이루고 있었다. 역시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이 맞는 가보다. 그렇게 한 창을 산을 오르니 정말 꼭대기에 새하얀 대리석으로 도배된 커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부터 비포장 도로가 말끔한 포장도로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게 내 생애 첫 기숙학원을 처음 조우했다.
학원에 도착하여 부모님과 차에서 내리는데 웬 커다란 백구 한 마리가 끈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우씨 무서버라.
"저건 도망 방지용 개인가?"
안내하는 사람도 없이 개 한 마리가 달려들듯이 우리에게 다가오니 괜히 쫄 뻔했는데 알고 보니 원생들에게 굉장히 이쁨 받고 있는 사람을 잘 따르는 백구였다고 한다. 아무렴, 학원에서 풀어놓고 기르는 데에는 이유는 있었겠지 설마 도망 방지용이겠어.
눈에 바로 들어오는 입구 같은 곳으로 들어가니 사진에서 보았던 커다랗고 층고가 높은 학원 로비가 시원하게 뻗어있었다. 마침 로비 정면 1층으로 새파란 단체복을 입은 남학생 무리와 보라색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 무리들이 오와열을 맞춰 복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손에는 무언가 단어장 같은 책을 쥐고 있었다.
엇! 사람이다.
당연히 사람 사는 곳이지만 그 모습이 신기했다. 곧 우리는 안내를 받아 1층 우측 상담실로 들어갔다. 학원장이 부재중이라 학감(교감과 유사)과 상담하게 된다고 한다. 한 사무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으니 곧 학감님이 들어왔다. 그 당시 모습과 내용이 아직도 생생하다.
일찍이 인터넷을 통해 학원 안내책자에서 보았던 내용들을 다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미 반 이상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만 직접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미리 들어와 공부하고 있는 재수생들을 보니 무언가 안심이 됐다. 공부만 할 수 있는 분위기도 되겠다 싶어 그 자리에서 등록했다. 나는 반 배치고사를 치르겠지만 아마도 학원의 '프리미엄 반'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단다. 학원에서는 당시 수능성적표의 등급을 기준으로 언어, 수학, 외국어 등급합 6등급(평균 2등급) 이내면 상위 2개 반인 프리미엄 반에 들어갈 자격이 생긴다고 안내했다. 자연스레 재수의 첫 목표를 기숙학원 최상반에 배정받는 것으로 잡았다.
그렇게 상담을 마치고 우리는 놀람과 기대를 얻고 집으로 곧바로 되돌아갔다. 그것이 기숙학원과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