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ves, 지난 삶 또는 전생. 지나간 삶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에 관한 영화이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영화 말미에 노라가 말했듯이, 예전의 나는 이제 존재하지 않고 지금의 나만 있을 뿐이다. 옛 인연이라는 것도 이미 다 지나간 일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전에 내가 맺었던 관계, 즉 인연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그 인연과 얽힌 추억을 되새기며 때로는 지금의 삶이 흔들리기도 한다.
사실 해성과 노라의 이야기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인연으로 12년 만에 한국과 미국에서 화상채팅을 하게 되었다가 다시 멀어진 사이이다. 해성의 말대로 둘이 본격적으로 사귄 적도 없다. 그런 두 사람이 24년만에 뉴욕에서 직접 만나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노라 (그리고 해성과 노라의 남편 아서)의 감정 속으로 관객을 이입시키는 연기와 연출력이다.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이기에 감독은 아주 디테일한 인물들의 감정까지 연출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노라역의 그레타 리, 해성역의 유태오, 노라 남편역의 존 마가로의 연기는 과하지 않으면서 좋았다. 노라와 해성이 24년 만에 만나서 보내는 어색한 시간들도 잘 그려졌고 특히, 해성이 떠나기 전날 밤에 세 사람이 만나서 새벽까지 이야기 나누는 장면에서 노라 남편의 불편한 감정과 노라와 해성이 애틋해하면서 맘속의 얘기를 꺼내는 마음이 느껴져서 관객을 안타깝게 만드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지나간 인연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 지난 일이니 지금 이 순간의 삶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인가. 영화는 우리에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껏 가져온 인연의 결과물이라고 이야기 하는 듯하다. 지나간 삶 즉, Past lives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 가졌던 열정, 사랑, 그리고 선택은 지금의 나를 만들고 현재의 삶을 위한 자양분이 되어 있으니 그 선택을 후회하지 말고 긍정하고 받아들이자는 메시지로 이해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해성을 배웅하고 난 노라는 남편의 품에 안겨 운다. 지나간 삶에 미련도 남고 그리운 감정에도 휩싸였었지만 이제 그녀에게 해성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그녀는 작가로서의 삶에 다시 충실할 것이다.
사족 하나. 노라 남편 아서는 정말 성인군자의 반열에 오를 만한 인물이라는데 영화를 본 우리 식구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난데없이 한국에서 온 아내의 옛 남친을 같이 만나는 기분 나쁘고 불편했을 상황을 참고 이해해준 (물론 유쾌하지 않다는 표시는 했고 힘들어 하는 표정도 지었다) 그의 이해심이 대단하다. 그 역할을 맡은 존 마가로의 연기 또한 좋았다.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보다는, 내가 한 선택, 내가 맺은 인연들을 긍정하기. 그 선택과 인연들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