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함께 만드는 변화의 시작
다모임은 단순한 회의가 아니라, 각자의 입장이 아닌 모두의 의견을 모아 함께 논의하고 반영하려는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학교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있다.
"회의가 그렇게 많다면서요? 힘들지 않아요?"
그렇다. 혁신학교는 회의를 정말 많이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그 의견들을 토의하고,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사실 처음 혁신학교에 발령을 받았을 때는 이러한 회의문화가 조금 힘들게 다가왔다. 솔직히 말하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때는 이 시스템이 낯설고 불필요하다고 여겼었다.
2011년, 혁신학교로 처음 발령받았을 당시 나는 만삭의 임산부였다. 매주 화요일 오후 3시, 영어교실에서는 '다모임'이라는 회의가 진행되었다. 나는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다음 달 출산을 앞둔만큼 회의에 참여할 여유가 없었다. 교실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회의 내용을 듣기만 하곤 했고, 회의가 종종 퇴근시간을 넘겨 끝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개교한 지 이제 막 1년을 채운 학교였던 만큼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회의가 더 길어진 것이었으리라.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처럼
다모임 회의 안에서도 의견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며 뜨겁게 오갔다.
처음 영어 교실에 들어가서 회의를 지켜봤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눈에 다모임은 멀리서 보이는 '아지랑이'처럼 느껴졌다. 과열된 아스팔트 위에서 피어오르는 희미한 열기처럼 다모임 회의 안에서도 의견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며 뜨겁게 오갔다. 관리자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예산, 교사 구성, 교육과정 등 중요한 의사결정들이 이 모임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여러 교사들의 의견이 교차하고 토론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열기 같은 것이 느껴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선생님들이 그렇게 열띠게 이야기했던 세부적인 논의 주제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들 진지하게 토론을 나누던 그 아지랑이 같은 풍경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사실 그 전에 근무했던 나의 첫 학교에서도 회의는 있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부장선생님들과 관리자들 중심으로 부장회의가 진행되었고, 학년 선생님들은 부장이 전해주는 전달사항을 듣는 구조였다. 전달사항을 들으며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어도, "교장선생님 말씀입니다"라는 멘트가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논의는 중단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학년말 업무부장과 계원들이 모이는 교육과정 평가회도 있었지만, 저경력 교사들이 가진 문제의식이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회의 자체가 하나의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졌고, ‘이야기해봤자 소용이 없어’라는 생각이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혁신학교에서는 부장회의 대신 모든 교사가 참여하는 '다모임'이 있었다. 말 그대로 다 함께 모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리자의 권한으로 여겨졌던 다양한 안건들이 다모임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회의 문화가 낯설었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교실 운영만으로도 너무 바빴기 때문에 학교의 전체적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처음 1년은 다모임이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회의에 자주 빠지기도 했다. 특히 내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의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졌고,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힐 때면 그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뒤, 학년말 교육과정 평가회에 참여했다. 교육과정 평가회는 1년 동안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돌아보고, 평가하고, 다음 해에 수정·보완해야 할 것들을 결정하는 자리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학년 배정'과 관련된 논의였다. 관리자 권한으로 생각했던 학년 배정을 포함해 학교의 많은 규정들이 다모임에서 논의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 전에는 결정 과정이 늘 깜깜이 같다고 느껴졌는데, 혁신학교에서는 굉장히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누구든지 의견을 낼 수 있었고,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는 의견이라면 그것이 어떤 의견이든 받아들여졌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있는 주제에 대해 다모임이 진행되는 훨씬 활발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그제서야 내가 몰랐던 학교 일들, 학교 전체를 움직이는 시스템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모임은 단순한 회의가 아니라, 각자의 입장이 아닌 모두의 의견을 모아 함께 논의하고 반영하려는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전까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만을 위한 선택을 고민했다면, 다모임을 통해서 학교 전체, 공동체 전체의 시스템을 위해 생각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문화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필요한 문화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학교는 혼자 만드는 공간이 아니다. 혼자의 노력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의견과 고민이 함께 모여야 지속 가능한 변화와 발전이 일어난다. "회의가 많다면서요? 힘들지 않아요?"라는 질문에 지금은 이렇게 답한다.
네, 힘들어요.
하지만 그만큼 가치 있고, 꼭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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