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가 만들어 가야 할 길.
“선생님, 다른 혁신학교 가신다면서요?”
바로 옆 혁신학교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누군가가 건넨 인사말이었다. 인근에 있는 3곳의 혁신학교. 그곳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나. 맞다. 나는 혁신학교가 좋다. 이렇게 연이어 혁신학교를 찾아다니게 된 이유는 혁신학교에서 내가 바라는 학교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이다.
처음 학교에 발령받고 나는 너무 놀랐다. 나는 학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교감 선생님은 교사는 행정가여야 한다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 이전에 공무원이기 때문에 행정적인 일을 잘 해내야 한다고. 동의하기 어려웠다. 공무원이지만 교사이기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더 집중하라고 이야기하는 곳이 학교여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수업 중에도 수시로 메시지가 왔고 전화가 왔다. 방송 업무를 맡았던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제쳐두고 학교 이곳저곳으로 불려 다니기 일쑤였다. 업무에 밀린 아이들에게 영화를 틀어주고 급하다는 공문을 쓰는 일도 더러 있었다. 방과 후에도 수업에 대한 고민보다 업무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기에 바빴다. 같이 발령받은 동기들도 학교의 동료 교사도 모두 그렇게 일을 했기에 학교는 그런 곳인 줄 알았다.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는 물론이고 교사는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명확히 배우지 못한 채 첫 학교를 지났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다시 돌아간 학교. 그곳은 혁신학교였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다른 업무 없이 온전히 학급담임으로서 나의 역할을 해볼 수 있었다. 학교 운영은 ‘교육활동’ 중심으로 ‘학급’과 ‘학년’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방과 후에는 동학년 선생님들과 모여 수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대해 고민했다. 다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는 학교 운영에 반영되었고 다모임을 통해 배운 교사들 간의 민주적인 회의는 나의 학급 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교실에 집중하다 보니 교사의 역할과 수업에 고민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 ‘이 내용은 어떻게 수업하면 좋을까?’ 등등
고민의 시간은 쉽지 않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런저런 자료로 남의 흉내만 냈던 나의 학급 운영은 고민이 쌓이는 만큼 자리를 잡아갔다. 해마다 어디 좋은 자료 없나 찾아보던 습관은 사라지고 ‘나의 것’을 만들 수 있을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교실에 집중하다 보니 교실 속 다양한 관계가 보였다. 여유가 없다면 그냥 지나쳤을 표정, 말투, 행동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00아, 오늘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00이랑 싸웠어?”
아이들 간의 관계에 더 신경 쓸 수 있고 교사로서 나와 아이들의 관계도 더 잘 쌓아갈 수 있었다. 무턱대고 장난치는 걸로 보였던 아이들의 행동에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완벽할 순 없지만 교실에서 맺어지는 관계가 전보다 편해졌다. 내가 편하게 느끼는 만큼 아이들도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왜 만드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주간 학습은 우리 반 만의 수업계획이 되었다. 어떤 때에는 학부모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하였다. 내 생각이 담긴 수업계획으로 학급으로 운영하니 학부모와의 관계도 전보다 수월해졌다. 궁금해하는 교육활동에 대해 내 생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학부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도 편해졌다.
내 교실이 편해지니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교실에서 내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하자, 다른 학년의 교육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혁신학교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기본 회의체계인 교사 다모임에도 더 잘 참석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나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적인 학교 운영에 참여한 경험은 다시 내 교실을 더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큰 밑바탕이 될 수 있었다. 교실과 학교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학교가 만들어가는 길, 그 출발점은 교실이 되어야 한다. 각 교실의 다양한 교육활동이 적절한 지원을 받고 운영될 때 자연스레 교실이 모여 학교가 되는 것. 각 교실이 가는 길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잘 맞춰 간다면, 결국 교실이 가는 길이 우리 학교가 가는 길이 되지 않을까?
교실이 안정적인 출발점이 되기 위해서 학교는 어떤 지원을 해야 할까? 매해 바뀌는 학년, 교실, 교과와 수업 내용. 사실 초등교사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은 너무 크다. 교실에서 이뤄져야 하는 교육활동과 학급 아이들, 학부모와 소통만으로도 너무 버겁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교실과 교육활동 이외에 더 많은 것을 교사에게 쥐여준다. 교사는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하는 교육자이고 교육예산 계획부터 집행, 검수까지 탁월한 행정가여야 하며 마음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상담가가 되어야 한다. 교육 관련 법과 제도에 대해 빠삭한 학교폭력 전문가여야 하고 이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갈등 조정가여야 한다.
교사가 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학교의 모든 문제를 교사에게 맡기는 상황에서 어딘가 구멍이 날 수밖에 없고 이는 눈덩이처럼 켜져 더 큰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각종 업무를 해야 했던 예전의 나는 학급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리고 세심하게 돌보지 못한 학급은 학기 말에 학생들 간의 관계로 불편한 공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여러 혁신학교를 통해 교육활동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교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학급에 집중할 수 있으니, 학생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갈 수 있었고 학부모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학교에는 이미 교사의 다양한 역할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과 편 가르기보다 함께 학생들의 교육활동을 지원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손을 맞잡고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가면 좋겠다. 교사가 학급, 학년 교육과정에 온전히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학교가 더 많이 변화하기를 바라본다.
나는 더 이상 혁신학교가 특별한 학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나의 역량을 교실에 온전히 쏟을 수 있는 학교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래서 더 이상 혁신학교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길. 그런 안전한 공간에서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