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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쌤 Oct 18. 2024

서로의 마음이 만나면

교사로서 가야 할 길.

 19명. 개교할 때 6학년 아이들의 수였다.

  민감한 시기인 6학년에 새로운 마을로 이사 오고,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온 아이들은 마음이 곤두서 있었다. 곤두선 마음은 서로를 향했고 따돌렸고 미워했다. 그러다 화해하고 또 배신했다. 하지만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위태롭게 매달렸다. A선생님과 나는 중간에 이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가까이 들여다본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이 다쳐있었고 삐뚤어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를 바라보게 할 수 있을까?      


밤늦은 시간 학교에서  

    

 여학생의 날, 남학생의 날. 지난 혁신학교에서 배운 학생 관계 회복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의 관계가 무너져 가는 것이 보이자 나는 바로 이 프로그램이 떠 올랐다.


 금요일 오후 5시, 6학년 남자아이들 10명이 다시 학교로 모였다. 학교 뒤뜰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볶음밥도 볶아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실에서는 굳어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빈 운동장에서는 티볼도 하고 축구도 했다. 강당에선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커다란 농구 골대도 내려 신나게 놀았다. 밤에는 걷기만 해도 무서운 학교 복도에서 별거 없는 담력 훈련도 했다. 실컷 놀고 야식으로 치킨과 떡볶이를 시켜 먹으며 속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여학생의 날은 일주일 후, 금요일로 정했다. 남자아이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들은 여자아이들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관계가  복잡했던 여자아이들이었기에 조금 더 신경이 쓰였다. 처음에는 어색해 보이아이들은 활동이 계속될수록 서로를 보고 웃고 있었다. 함께 간식을 먹으며 그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단한 프로그램은 없었지만 밤늦게 학교에 남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한 걸음 더 가까워졌고 서로에게 그리고 A선생님과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며 남은 1년을 보내고 다음 해 1월, 웃으며 졸업할 수 있었다.


  혁신학교에서 경험한 여학생의 날, 남학생의 날, 학년 야영, 학급의 밤 등 다양한 활동들은 교사로서 나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수업 시간에 만나는 아이들과 늦은 저녁 학교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은 참 달랐다. 서로의 눈을 더 바라볼 수 있었고 더 많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교실에서 미처 살피지 못한 표정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다. 


  아이들과 생활한다는 건, 서로 마음을 나누는 거라는 걸 혁신학교에서 배웠다. 아이들과 마음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수업도 생활지도도 상담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다 각자의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마음을 내어준다는 건     


 하지만 마음을 내어준다는 건, 그만큼 마음을 다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했을 때 그 결과가 내 맘 같지 않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르게 생각할 때 나는 상처받았다.

 ‘열심히 해서 뭐 해.’

 ‘대충 하자.’

그럴 땐 상처를 덮으려고 상처받은 마음도 같이 덮어버렸다. 상처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마음을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속 작은 생채기는 더 곪아버렸다.      


 마음속 상처를 잘 치유하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건 공동체였다. 교사로서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연스레 교사 공동체를 만나게 되었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맞는 옆 선생님에게 마음을 터놓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공동체가 되었다. 아이들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동학년 선생님들과 고민을 나누는 것. 그렇게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공동체는 나를 치유했고 성장시켰다. 그리고 마음을 나눈 공동체는 함께 더 좋은 학교를 꿈꾸게 했다.      


교사든 아이든 어떠한 개인도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곳,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의 고유함을 희생하지 않는 곳,
그러나 동시에 개인이 생각하기 어려운
더 높은 가치를 꿈꾸게 하는 곳, 그곳이 공동체다.
 - 교사, 함께 할수록 빛나는 / 김종훈 저/템북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학교는 작은 사회이다. 우리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학교라는 공동체가 따뜻한 곳이 되길 바란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약한 사람을 생각하는, 서로를 위해 공헌하는 그런 따뜻한 사회 말이다. 학교가 그런 곳이 될 수 있도록 나는 마음을 나누는 교사가 되고 싶다.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


 교실 안 내 책상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옆 반 또는 동학년 교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마음을 내어주고 싶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곪아있던 상처도 어느새 회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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