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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그렛 Jan 31. 2019

그 나이 먹도록 뭐했어요? 놀았는데요.

늦깎이 인문계열 취준생의 고군분투 생존기 01

 취준생의 길로 접어든 지 4개월 째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직을 준비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난 지금 놀랍게도 신입 공채를 준비 중이다. 심지어 여자다. 맙소사, 이 부분에서는 아마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안타까워할 게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28살이래> <신입이라는데?> <취직 안 하고 뭐하고 살았대> <28살이나 먹고 취직할 수 있을까. 써주는 데도 없을 텐데> 넵.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군대도 안 다녀왔는데 졸업을 26살에 했다. 요즘이야 스펙 쌓기니 뭐니 늦게 졸업하는 추세이니, 졸업이 늦은 건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나는 26살, 27살 2년의 공백기 동안 무엇을 했는가.




첫 번째 반응, 혹시 공무원 시험 준비하셨어요?


28살 먹고 이제 취준 한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저 반응이다. 글쎄요. 공무원 시험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데요. 물론 부모님은 매일 같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라고 성화셨다. 그렇게 놀 거면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 그러게요. 옛말에 어른들 말씀 하나 틀린 것 없다더니.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해볼걸 그랬다. 그랬다면 명절 때마다 만나는 친척들한테 변명거리라도 있었을 텐데. 올해 설에도 집에 내려가긴 글렀다.



두 번째 반응, 혹시 너 금수저야?


이건 열 중 나머지 하나. 여자가 이 나이 먹고 아직 놀고 있으면 분명히 숨겨둔 땅이나 건물이라도 있겠지. 혹은 물려받은 가업이라도 있다던가. 하는 비상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아주 가끔은, 있다. 그런데요, 그런 땅이나 건물이 있었으면 제가 졸업을 스물여섯에 하지도 않았어요. 지금에야 28살 먹고 이렇게 놀고 있으니 한심하다며 나를 비웃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대학교 4년 내내 학교 다니면서 주 5일 최저임금을 받으며 편의점, 빵집, 아이스크림 가게 등 온갖 서비스업 아르바이트를 마스터했다. 평일엔 빵집, 주말엔 편의점 두 탕 뛰느라 빵집에서 "반갑습니다. 씨유입니다." 했다가 손님에게 의문의 눈초리를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니까.




나를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어요


대학교 4년 내내 부모님 용돈 받으면서 스펙 준비한 사람 vs 대학교 4년 내내 아르바이트하며 생활비, 학비 충당하느라 바빴던 사람. 까놓고 말해서 둘 중 어느 한쪽이 덜 열심히 살았다고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현실은 후자에게 끊임없이 손가락질을 한다. "학교 다닐 때 뭐했길래 학점이 이거밖에 안돼?", "휴학은 뭐 이렇게 많이 했어?", "토익 점수는 왜 이거밖에 안돼?" "왜 자격증이 하나도 없어?"


학점은 낮은데요. 일 잘한다고 다른 가맹점주가 와서 스카우트하려고 했던 적도 여러 번이고요. 남들 다 가는 유럽여행 가고 싶어서 휴학은 몇 번 했어요. 자취하니 이리저리 돈들 데가 많아서 휴학 여러 번 하고 나서야 겨우 여행 갈 수 있었어요. 토익 공부하겠답시고 토익 학원 끊었는데,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죠. 남들 스터디할 시간에 아르바이트하러 갔더니 그 점수밖에 안 나오네요. 그래도 자격증 하나 없어도, 진상 손님에게 웃으며 대처해서 돌려보내는 기술 하나는 마스터했어요.




그래서 넌 뭘 했니? 인문사회대생의 고군분투 직무 방황기


다시, 본론이다. 그래서 넌 뭘 했니? 졸업하고는 비영리단체 인턴을 했다. 나는 대학 재학 시절에 인권 활동을 했다. 비록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시사 블로그를 운영하기도 하고, 교내 인권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평생 활동가의 삶을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인턴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활동을 한다는 것과 업으로 삼는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몇 달간의 인턴 생활 끝에 나는 멀리서 후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훗날 이 인턴 경험은 여러 중소기업 면접을 볼 때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그다음으로는 국가지원 교육으로 포토샵과 일러스트를 배웠다. 인문사회계열 졸업자가 갈 곳은 없다는 냉철한 판단 하에 일단 뭐든 배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디자인은 무슨. 고등학생 미술 실기 때도 C를 받은 내 미적 감각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몇 달만에 생겨날 리 만무했고, 나는 편집디자인 쪽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렸다. 그래도 하나 얻은 거라면, 창작은 어렵지만 적어도 똑같이 만들 수는 있다는 것. 이제 기본 툴은 다룰 줄 아니까.


직무 방황자는 그다음 길로 관광가이드를 선택한다. 매일같이 알바를 하면서도 여행을 가겠다고 휴학을 해가며 해외로 국내로 돌아다닌 경험을 떠올리며, '그래, 결심했어. 내 길은 관광업이야.'라는 비장한 각오를 했었다. 그렇게 한 공단에서 하는 관광가이드 교육을 받게 된다. 그.러.나. 결국 관광가이드도 영업직이란다. 강사님께서 말씀하셨지. "알파카 이불을 팔지 못하면 너네 집에 있는 이불을 갖다 팔아야 해." 자취방에 외풍이 심해서요. 저는 이불 없이는 못 자요. 또 그렇게 하나의 직무와 등을 돌렸다.




너는 왜 그렇게 끈기가 없니


그렇게 일 년을 보낸 후, 나는 나머지 팔개월을 정말 말 그대로 '놀았다'.(아무것도 안 하고 논 것은 아니다. 나의 '놀았다'는 놀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면서 지냈다는 말과 동의어다.) <아르바이트하고, 여행 가고, 아르바이트하고, 여행 가고>의 반복이었다. 난 나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열심히 노력한 것 같은데, 노오력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더니 내 삶은 왜 이래.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끊임없는 회의감에 될 대로 되라지. 하루살이의 인생을 살았다.


"이것저것 해봤는데, 다 저랑 안 맞더라고요." 나는 내 고군분투 공백기를 애써 가볍게 포장한다. "일이 마음에 들어서 하는 사람이 어딨니?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 너는 왜 그렇게 끈기가 없어?" 끈기가 없다니 억울하다. 나만큼 끈기 있는 사람이 어딨다고. 남들 다 사장 욕하면서 때려치우는 빵집 알바도 한 곳에서만 3년을 넘게 일한 사람이다. 내 길이 아닌 것 같은 길을 빨리 접은 것이 그렇게 죄란 말인가. 물론 취업시장에서는 '죄'가 되었다. 1년 미만의 내 경험들은 그 어디에도 적을 수 없는 단편적인 조각으로 흩어져버리고 말았으니까. 나는 그렇게 2년의 공백기를 가진 장기 취준생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목숨은 끈기가 없어도 붙어있잖아요


그런데, 목숨은 끈기가 없어도 붙어있더라. 삶이라는 것이 생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끊임없이 움켜쥐어야만 주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살겠다는 끈기가 없는데도 살아있다. 어쩌면 죽겠다는 끈기가 없어서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So What? 이번 상반기까지만 해볼 참이다. "여자 나이 28이면 불러주는데 고맙다고 하고 다녀야 해." 끊임없는 주변인들의 가스라이팅에 사원 수 5명에 재정 상태도 안 좋은 회사에 무턱대고 간다고 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상반기까지만 버텨보자. 나는 할 수 있다. 난생처음 해보는 기업분석이니 뭐니, 아직은 갈 길이 많지만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오늘 하루도 살아내보자. 대한민국 취준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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