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의 쓸모와 비어내는 모습과 찢긴 잎들의 흔적
막 신혼집 살림을 꾸릴 무렵에는 흰 물건이 무섭지 않아지는 병에 걸린다. 아이보리, 베이지 그런 색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냄비받침도 밝은 직물소재의 것을 골랐다. 그건 뜨거운 스테인레스, 국물, 손때를 묻으며 1년도 안된 새에 헌 것이 되고 말았다. 저걸 내다 버려야지 수차례 생각했다가 오늘만은 다르게 생각해본다. 헤질 것, 바랠 것에 대해서. 세상 모든 물건은 제 바지런한 쓰임을 친절하게 보여준다. 짧아지고 뭉툭해질 것, 불투명해지거나 노랗게 될 것, 닳아서 없어지거나 연소될 것. 소진은 추한 것이 아니라 박수받아야 할 성과이자 영광의 업적이다. 얼룩은 상처가 아니고 패(牌)이다. 이제 나는 좀 쉬어야 겠소, 위풍당당하게 들이밀 것이다.
찬장 관리는 언제나 어렵다. 같은 색의 식기를 크기대로 맞추어 정렬하는 것은 미적감각은 차치하고도 대단한 물리학적 계산과 성실함, 기억력이 없으면 해낼 수 없다. 와인잔은 어떤가. 행여 못 찾거나 깨질까봐서 자주 쓰지도 않는 것을 가장 잘 보이는 데 두었다. 전시(展示)같은 것이다. 여러 번의 끼니를 라면으로 떼우더라도 신혼부부처럼 나란히 선 와인잔이 기분을 맑게 해준다. 오늘도 와인잔 근처의 이것저것을 갖다 버리면서도 이것만은 악기처럼 세워두었다. 하릴없이 텅 빈 속으로 아무것도 없는 표정을 하고 자리를 우두커니 지키는 모습이 우리 부부같았다. 금융하향선을 꾸준히 그리는 작금은 오히려 전시(戰時)상황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자본의 총칼을 들고 협박을 해도 지금의 우리는 무한히 멀거니 쳐다만 볼 것이다. 비어있는 이 상태가 무척이나 좋기 때문이다.
산재해 있는 차의 흔적들을 주워 본다. 싱크대 사이는 물론이요, 정수기 위, 퇴사할 때 가져온 짐에도 보물처럼 숨어 있다. 명상이나 요가가 그랬던 것처럼 직장생활에 바쁠 대는 본능적으로 차분함을 불러오는 것들에 집착했다. 그러나 티백은 정확한 처방이 아닌 부적에 가까운 것이었을까. 어쩌면 다도를 즐기는 주변 사람들의 평온한 모습을 보고서 빌려다 놓은 액자같은 거였을 지도. 일을 쉬게 되고 나서는 차를 잘 마시지 않는다. 오히려 못 먹던 카페인에 도전도 해본다. 심장이 뛰어도 괜찮다. 퇴사 후에 신경안정제 섭취량이 현저히 줄었으니가. 머리를 식히는 건,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건 물질만으로는 부족하다. 요란하게 잎을 괴롭힐 게 아니라 뿌리를 눕힐 일이다. 남들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견딜 때, 나는 가향의 세계에서 벗어나 종아리 마사지기를 끼고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