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땐 간호사, 낮에는 도우미선생님, 졸릴 땐 아빠가. 엄마는?
*신생아 아기를 키우며 짤막한 에세이를 연재하려 합니다. 짬짬이 글이니 길지 않고 자연스럽게.
출산 후 35일이 되고도 온전히 반나절 이상의 육아를 해본 적 없다. 우리 아기는 이른둥으로 태어나 3주가 넘도록 대학병원 NICU(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다. 그때는 간호사들이 밤낮으로 아기를 돌봤으며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하루 30분뿐이었다. 날마다 미친 듯이 사진과 영상을 찍고 하루 종일 릴스를 만들며 그 시간들을 견뎠다. 당시에는 가슴이 아팠지만 육아에 지친 지금 생각해 보니 일종의 ‘책임 없는 쾌락’을 즐긴 것도 같다.
집에 오니 현실육아가 시작됐지만 산후도우미 이모가 9-5로 아기를 봐주시니 1/3의 시간은 육아로부터 해방됐다. 아니, 그 시간에 아기 빨래며 샤워며 밥과 청소 같은 집안일도 해주시니 시간은 무의미요 절반 이상의 수고를 덜어주신다.
나머지 1/3은 남편과의 저녁시간. 그가 돌아오면 같이 저녁을 먹고 같이 달래고 가족 일을 의논한다. 그러고 새벽 한 시쯤에는 남편을 안방에 넣고 문을 닫아준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 낮에는 집에서 노는 내가 새벽육아를 하겠다 자처한 것이다.
아기 엄마씩이나 되고서 겨우 하루 1/3의 시간을 전담하는 건데도 몸이 축축 늘어졌다. 낮에는 잘만 자던 아기가 새벽만 되면 눈이 똘망해졌다. 뭘 해도 잘 생각이 없고 날마다 새로운 자극(안아주기, 안고 흔들기, 안고 흔들며 노래 불러주기...)이 없으면 쉽게 잠들지 않았다. 잠에 들더라도 두세 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줘야 하기 때문에 쪽잠을 자기도 어려웠다.
언젠가 너무 졸리고 손목이 아픈 새벽에는 남편을 깨워 내보내고 침대에 누운 적이 있었다. 아기는 남편 품에 안겨 금방 잠에 들었다. 아기에게 엄마는 우주와 같다고 하지 않았나? 나보다 산후도우미 이모와 남편 손길에 더 조용해지는 아기를 보며 강한 현타가 왔다. 겨우 1/3의 역할도 해내지 못하는 내가 과연 엄마가 맞긴 한 건가? 육아한다고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안하고 있는데,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다음날 산후도우미 이모가 오시자마자 하소연을 쏟아냈다. “원래 이 시기가 가장 힘들어요”하고 차분히 위로해 주시는 덕에 너덜한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친한 육아동료도 아기울음은 랜덤으로 당첨되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원래 낮보다 밤육아가 원래 더 외롭고 힘든 법이었다. 호르몬이 날뛰는 산모에게는 더욱더.
잠시 짬이 나서 이렇게 침대에 누워 조각글을 쓰면서도 의심한다. 그런 나를 토닥이며 우울에 빠지지 않게 열심히 긍정해 본다.
도우미 이모와 육성방향을 논의하고 용품을 의논한 일을 떠올린다. 아기에게 맞는 물품을 골라서 주문하는 것,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엄마의 특권이다.
가끔 넓은 남편 품에서 더 잘 자기도 하지만, 말랑한 찌찌에 얹고 임신기간 동안 함께한 심장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것도 나만의 특권이다.
이렇게 남의 도움을 아주 많이 받고 있지만 엄마로서의 특권과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하고 있다고 토닥여본다. 무엇보다 모든 사회적 시간을 포기하고 이 일에 전념하고 있다는 것, 그 외로운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인 용기만으로 엄마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고 자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