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분매초 나를 흑화 시키는 일과 일상 속에서
마음이 가는 곳
내 마음은 너무 예뻐서
꽃처럼 잠깐 피다가 말았어요
내 마음은 너무 명랑해서
종이비행기처럼 머얼리 날아갔어요
내 마음은 너무 순수해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어요
빈수레 같은 몸으로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어요
예쁜 마음이 떠난 자리엔
무엇이 들어오는지
기다리면 혹시나 돌아오는지
나는 버스종점 근처에 산다. 그래서 출근길 만원 버스를 첫 번째 정류장에서 탈 수 있다. 웬만하면 앉아서 갈 수 있어서 이만한 행복이 없다. 그래도 주거 밀집지역인지라 승차할 때는 앞문이고 뒷문이고 사정없이 밀치며 올라타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꼭 앞문으로 타서 뒷문으로 내리는데, 굳이 뒷문 쪽으로 걸어가 좋은 자리를 잽싸게 차지해버리는 이들을 보면 심술이 난다. 몇 번은 큰 소리로 비아냥거린 적도 있다.
하나 이보다 더 거슬리는 게 하나 생겼으니 바로 무임승차다. 만원 버스일수록 정차하는 정류장마다 뒷문으로 승객을 태우는 경우가 잦아지는데, 뒷문은 버스카드를 찍는지 기사님이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다. 이를 틈타 얌체같이 닌자처럼 몸을 숙여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인파에 밀려 못 찍은 척 냅다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이런 무임승차족을 한 번 목격하고 나니 이제는 며칠에 한번 꼴로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잠에서 깬지 한 시간도 안되어 만나는 이 불쾌한 경험은 하루 전체의 감정을 지배할 만큼 영향력이 컸다.
인류애가 사라진다라는 말. 온라인 상에서는 꽤나 오래된 숙어(?)이다. 보통 위의 무임승차족처럼 민도에 어긋난 행위들을 보거나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목격할 때 쓰는 말이다. 요새 내가 그렇게 됐다. 고개를 빳빳히 든 무임승차족을 삼십분가량 노려보고,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완전체인 클라이언트의 전화에 시달리고, 상사에 치이고 후배들에게 실망까지 거듭하는 상황이니, 올 7월은 그야말로 성격 파탄의 달이 됐다. 거기에 줄줄이 이어지는 직원들의 코로나 확진까지. 2주동안 타팀 우리팀을 가리지 않고 빈자리를 메꾸니 체력이 바닥났는데 아픈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할 수도 없고. 굳이 미안하다 고맙단 말이 없었다는 거나 곱씹고 있고. 나 빼고 다 세상 멍청이 같다가, 내가 너무 치졸한 것 같다가, 말도 하기 싫고, 뭐든지 짜증부터 났다.
한번 삐뚤어지니 별게 다 스트레스가 됐다. 모든 게 싫어 죽겠고 미워 죽겠고 짜증 나 죽겠다. 평소 같으면 좋게 좋게 넘어갔을 일도 별일로 만들었다. 일할 때는 카톡 알림이 뜰 때마다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숨을 푹 쉬며 화면을 들여다보니 "넵"이라는 한 글자만 떠 있었다. 너무 쉽게 짜증내고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과장님, 이러다 흑화 하시겠어요.."
자리에서 하는 혼잣말도 한숨도 느니 동료직원들의 반응부터 달라졌다. 누군가에겐 내가 진상 민폐 상사일 것이다.
이왕 일할 거면 즐겁게 하자는 신조를 가지고 직장에서 버틴 지 6년 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슬럼프와 번아웃도 이제는 대충 나만의 대처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혼란스러운 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그 눈으로 향하는 길을 버티는 일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요새 매일같이 이런 상태이다보니 '예쁜 마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런데 예쁜 마음이 없는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반대로 치면 '못생긴 마음'? 아니면 나쁜 마음이나 우울한 마음? 사실 뭐라고 규정짓기도 애매하다.
종잡을 순 없지만 딱히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일 때 나는 굳이 정의를 내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지나갈 태풍이라면 내 것이 아닌 상태로 두는 것이다. 지금 지나가는 마음은, 인류애가 바닥을 기고 세상이 삐뚤게 보이는 이 마음은 이름을 지어 붙들어둘 정도로 가치가 있지 않다.
예쁜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나쁜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사람들은 마음이 가는 대로 살라고 하던데. 저-만치, 예쁜 마음이 간 곳을 바라보면서, 매 순간 예쁘지 않은 마음을 쳐내면서, 웬만하면 빨리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