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부서에서 '인사이트'는 마법의 단어처럼 쓰인다. 컨셉, 아이디어, 기획안, 프로젝트 아웃풋 등 거의 대부분의 결과물 앞에 '인사이트가 있는'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순간, 그리고 그렇게 평가되는 순간, 그것의 가치는 수십 배 오르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임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멤버들은 그들의 결과물이 인사이트 있기를, 그렇게 평가되기를 갈망한다. 그런데 정작 "인사이트가 도대체 뭔데요?"라는 질문에는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듯하다.
사실 이 부분은 나를 포함한 업계 사람들이 인사이트에 무지해서가 아니다. 무엇인가를 정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 어렵다. 특히 그것이 만져지지 않는, 개념적인 것인 경우 더욱 난해하다. '짜증'을 정의할 수 있는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상황에 짜증이 나는지는 경험에 의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잘 조합해 짜증이 어떠한 성질의 것인지, 짜증 나지 않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인사이트도 마찬가지다. 어떤 맥락에서 인사이트 있다고 느꼈는지, 어떤 결과물들이 인사이트 있다고 평가받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의 정체를 알아갈 수 있고, '인사이트 있는'이라는 타이틀을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적어도 회사 조직에서는 훨씬 실용적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사이트 자체에 대한 고찰이 아닌, 인사이트 있는 무언가 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경험적으로 인사이트 있다고 느꼈거나, 그런 평가를 받았던 사례들이다.
1. 모든 것은 필드의 실제 보이스로부터
세상은 다각화되어가고 복잡해져 가고 있다. 트렌드라는 단어로 모든 대중을 한 덩어리로 보며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런 시대가 도래할수록 사람들은, 그리고 우리의 임원들은, 트렌드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트렌드 리서치를 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하나의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현상 중 몇 개를 추려 '이것이 트렌드다'라는 주장을 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듣는 사람(대부분 의사결정권자)은 보통 본인의 경험, 본인이 받았던 보고, 본인의 관심사 등에 빗대어 우리의 주장을 평가한다. 따라서 주장의 시작점이 주장을 하는 사람(대부분 우리들)의 생각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주장이 의사결정권자의 경험과 반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높은 확률로 무참히 깨질 것이다. 따라서 주장의 시작은 필드의 실제 보이스에서 하는 것이 좋다. 고객을 등에 업고 설득의 전투에 임하는 것이다.
필드의 보이스를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설문을 하는 방법도 있고, 그룹 토의를 하는 방법도 있다. 전문가 인터뷰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전문가의 영역을 넓게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전통적으로 학계,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얻는 것도 좋지만, 해당 분야의 진성 마니아들, 유튜버 들, 커뮤니티 운영자 들과의 인터뷰에서 반짝이는 인사이트를 얻는 경우도 매우 많았다.
2. 숫자에서 의미, 다시 숫자로
인사이트와 데이터는 거의 한 몸이라는 느낌이 든다. UX 뿐 아니라 대부분 분야에서 Data driven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나는 이 시도에 매우 동의한다. 데이터는 오류를 줄여주고, 발산을 수렴하게 해 준다. 다만 조미료가 하나 필요한데 데이터를 정성적으로 바라보는 눈이다. 분석자의 시각이 들어가지 않은 데이터, 통계는 자칫 공허 해질 수 있다.
데이터는 보통 숫자로 표현되는데, 숫자의 덩어리 만으로는 어떤 의미가 생성되기 어렵다. 숫자와 숫자 사이의 간격에 내포된,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정성적 분석의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이 시간은 지루하고, 오래 걸리며, 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숫자는 의미가 되고, 의미는 관계를 이루어 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정량적 데이터를 정성적 시각으로 바라봤다면, 목적하는 방향을 다시 정량화할 필요가 있다. 모든 비즈니스 행동의 목표는 명확할수록 좋다. 보통 숫자가 이를 해결해준다. 그로스 해킹 분야에서 주로 쓰는 북극성 지표도 이와 유사한 접근이다.
3. 뒤집어 생각한다는 것
관점의 변화는 가장 오래된 아이디어 발상법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여러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행동은 간혹 매력적인 솔루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양한 관점으로 늘리기에 집중하다 보면 종종 방향이 모호해지고 주장의 칼끝은 무뎌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내가 자주 활용하는 관점은 철저한 고객 입장의 관점이다. 여기서 '철저하다'는 일종의 role-play를 뜻한다. 단순히 공급자와 대치되는 존재, 서비스나 제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사람의 의미로 고객이 아닌,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무엇을 진정 원하는지를 곁에서 보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일전에 소개했던 B2B UX 개선 사례도 이런 접근에서 비롯된 프로젝트였다. 실제로 비디오월 사이니지를 설치하는 장소에 찾아가서 그들의 루틴을 관찰하고, 불만사항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B2B UX의 개선방향이 도출됐다. 'B2B 사이니지 SI들이 안심하고 빨리 퇴근할 수 있게 하는 UX'라는 개선방향은 만약 내가 디자인 공급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는 짜증을 쉽게 정의하지 못하지만, 어떻게 하면 짜증 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인사이트를 적극 활용해서, 인사이트 때문에 짜증 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