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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 Sep 30. 2020

코로나와 재택근무, 그리고 신뢰

코로나가 바꾼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코로나는 세상을 송두리째 집어삼켰고, 사는 방식을 모조리 바꿔놨다. 마스크는 새로운 피부가 됐고,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새로운 매너가 됐다. 코로나가 경제, 사회, 문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리포트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연일 몇 명의 확진자가 생겼는지 서로 알려주는 것이 일종의 인사가 됐다.


코로나는 일하는 문화와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재택근무다. 사람들의 밀도를 낮추고 코로나 감염과 전파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재택근무가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속한 회사도 꽤 오래전부터 주 2~3회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있고, 필요한 회의는 화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아이를 육아하는 입장에서 재택근무는 한줄기 빛과 희망 같았다. 어린이집은 부모님 중 한 분이 확진되면서 휴원에 들어갔고, 아이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우리 집은 아내와 재택근무를 번갈아 하면서 버티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내와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장에 다니는 것이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문제는 재택근무가 장기화되면서 생겨났다. 조직책임자들 사이에서 재택근무가 업무의 퍼포먼스를 저하시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어떻게 부하직원들을 집에서도 일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다. 결국 나는 파트 멤버들을 감시 아닌 감시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 프로젝트 계획을 작성하는 것에, 하루 일과를 보고하는 것에 보다 많은 시간을 쓰게 됐고, 어쩌면 필요하지 않은 화상회의를 잡아서 결과 보고에 추가했다. 우리 팀이 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서글픈 현실이다.


퍼포먼스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 만들어진 이런 분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퍼포먼스에 해를 끼쳤다. 재택근무를 안 하는 사람은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에 대한, 퍼포먼스를 잘 내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조직의 책임자들은 조직 구성원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모니터링은 또 다른 부수적 업무를 만들어 내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제도적 장치의 보완에 우선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에, 잘 짜인 장치로 독려한다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일을 잘 해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므로 관계 속의 신뢰가 함께 일하는 팀워크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회사생활하면서 나에게 의미 있는 포트폴리오는 어떤 일을 해왔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어떻게 일해왔는가 였다. 그리고 물리적 거리를 둬야 하는 이 코로나 시대에, 내 동료를 얼마나 믿는가의 간격을 좁히는 일은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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